꿈달의 독서 산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 룰루밀러 지음, 서평

꿈달(caucasus) 2022.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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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과학 관련 서적을 자주 읽는 편인데, 우연히 지인의 책상에 이 책이 있는 것을 보았다.

제목이 워낙 특이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니... 부제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고 되어 있었다. 얼핏 보면 소설이나 수필인 것처럼 보이는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미국 실리콘밸리의 명문 대학교인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대 총장을 지냈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에 관한 책이다. 저자인 룰루밀러는 과학 저널의 기자인데, 본인에게 닥친 좌절스러운 현실을 극복하고자 실존했던 인물인 조던의 삶을 파헤치기로 한다. 평소 과학서적을 좋아하는 나로서 이 책은 매우 흥미로워 보였다. 얼핏 보면 소설같기도 했고 인어가 헤엄치고 있는 표지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 책은 생물 분류학자였던 조던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그 이면에는 인문, 철학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누구에게나 살다가 보면 매우 심각한 좌절과 실망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때 어떤 사람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위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무시한 채 다른 것에 몰두하곤 한다. 문제를 외면하고 기피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룰루밀러 역시 개인적인 사정으로 큰 좌절을 겪게 되는데, 우연히 생물 분류학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대기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의 삶을 구체적으로 파헤치게 된다.

 

 

실존했던 생물 분류학자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실리콘밸리의 명문대학인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대 총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그는 생존 당시 밝혀진 어류 1만2,000~1만3,000종 가운데 2,500종 이상을 식별해 목록화했다. 그는 생명체가 서로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그 관계를 밝히는 데 평생을 바쳤고,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수집한 어류 표본이 내동댕이쳐졌을 때 절망하지 않고 물고기의 피부에 이름표를 꿰매 붙이는 식으로 표본을 되살려 낸 끈기 있는 인물이다.

 

 

또한 그는 가족들이 모두 일찍 사망하는 불운을 연속해서 겪었다. 먼저 그가 매우 아꼈던 형은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대의를 지키고자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가 훈련소에 전쟁에 참전하기도 전에 열병에 걸려 죽었고, 첫번째 부인 역시 열병을 앓다가 죽게 된다. 그가 매우 사랑했던 딸 바버라는 9살에 성홍열로 사망하게 된다. 또한 그의 절친들 역시 생물 표본을 채집하러 바다와 정글을 탐험하다가 사고사를 당하거나 병사한다. 조던의 인생 전반에 불운은 마치 그림자처럼 항상 그를 따라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던은 생물, 그 중에서도 어류를 분류하는 작업에 평생을 바친다.

그는 생전에 나름대로 큰 업적을 쌓았고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명성을 얻게 된다. 하지만 그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범했던 가장 큰 실수는 총장의 자리를 위협하던 대학 재단 설립자인 제인 스탠퍼드를 독살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알려진바로는 그가 제인 스탠퍼드를 독살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 책에는 여러가지 정황상 조던이 제인 스탠퍼드를 독살했다는 여러가지 증거를 제시한다. 나 역시 저자의 판단에 동의하는 바다.

 

 

또한 조던은 결정적으로 우생학의 열정적인 지지자였다.

우생학은 인류를 유전학적으로 개량할 것을 목적으로 하여 여러 가지 조건과 인자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1883년 영국의 F.골턴이 처음으로 창시했는데, 우수 또는 건전한 소질을 가진 인구의 증가를 꾀하고 열악한 유전소질을 가진 인구의 증가를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는 그는 고착생활을 하는 멍게를 게으름과 퇴보의 예로 들었다.

인류에 대해서도 똑같은 원리를 적용했다. 빈곤과 타락 같은 특징이 유전될 수 있고, 박멸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 찰스 다윈의 고종 사촌인 영국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주창한 우생학을 미국에 들여온 이들 중 한 명이 조던이었다. 그는 우생학을 지지하는 논문을 발표했고, 자신이 지구상에서 제거해 버리고 싶은 빈민과 술꾼, 바보, 도덕적 타락자를 '부적합자'라는 한 범주에 몰아넣었다. '부적합자' 박멸을 위한 우생학적 불임화의 합법화를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 책은 참 독특한 책이다. 과학자의 일생을 전기처럼 서술하고 있지만, 사실 그 안에는 인문과 철학적인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소설과 같은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도 든다. 이 책에 주인공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의 인생 전반에 걸친 보통 사람이라면 이겨내기 힘들 여러가지 불운을 겪으면서도 죽는날까지 철저하게 낙관적이며 열정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가 인생을 철저한 낙관주의에 기반한 끈질긴 삶의 의지를 보여준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배울만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듯이 조던 역시 그릇된 믿음을 가졌었다.

바로 우생학에 대한 지지였다. 저자는 물고기를 한 집단에 몰아넣은 조던의 분류법에 대해, 인간이 우리의 상상 속 사다리에서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와 다른 동물들 사이의 유사성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민들레를 예로 들어 조던의 우생학을 반박한다. 누군가에게 잡초처럼 보이는 민들레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약재이자 염료로 소중하게 쓰일 수 있다며 우리 인간들 역시 분명 그럴 것이라고 전한다. 결국 약자든, 장애인이든, 사고로 불구가 되더라도 모두가 평등하고 각자가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처럼 누군가가 더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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