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최고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하이퍼)인플레이션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그리고 그 당시 독일을 나치즘의 광기로 물들였던 히틀러. 히틀러는 원래 화가가 되고자 했던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정치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독일을 전쟁의 한복판을 몰아넣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인플레이션 때문이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19년 초대 대통령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를 선출하며 역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는 히틀러가 태어난 해인 1889년 18세의 나이에 사민당에 가입해 사회민주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진보주의에 눈을 뜨게 됩니다. 1912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2년전에 사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지요. 그는 이듬해 사민당의 대표가 되면서 주목을 받게 됩니다.
에베르트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쟁에 찬성하며, 공채를 발행해 군비를 증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좌파들은 그를 노동자들을 배신했다며 비난했지만, 그는 중도적인 입장을 견지하며 보수 세력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합니다. 이 후 독일이 패전하자 독일 의회는 그를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지명합니다.
이렇게 출범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헌법은 여성에게 참정권을 인정하고, 노동자들의 사회복지권을 확대한 대표적인 진보헌법으로 역사에 기록됩니다. 하지만 패전국이 된 독일제국의 뒤를 이어받은 바이마르 공화국은 엄청난 국가 부채가 있었고 이것이 인류 역사상 최고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하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당시 독일의 외화 부채는 GDP대비 330%로, 역사상 역대 2위를 기록한 1987년도 페루 정부의 200%를 압도적으로 상회합니다. 이렇게 배상금 부담액이 발표되자 마르크화의 가치는 폭락합니다. (1921년 한 해에만 무려 75% 하락합니다.) 그리고 물가는 200% 이상 상승했습니다.
당시 승전국들은 패전국에게 전쟁으로 인한 손해 배상을 청구하기 위해 베르사유 조약을 맺었는데, 이 조약에서 독일이 소유한 모든 국외 자산을 압류, 동결하였고 독일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채권을 무효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사실상 바이마르 공화국은 부채를 상환할 여력이 없었던 것이지요. 할 수 없이 바이마르 공화국은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결국 돈을 찍어내서 부채를 갚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사태가 악화되자 독일 은행들에게 대규모 뱅크런 사태가 발생합니다. 경제상황 악화로 금융 시장에 위기감이 돌자 고객들이 대규모로 예금을 인출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사태가 급속히 악화되자 정부는 더욱 신속하게 마르크화를 찍어내 정부 부채를 화폐화하는 방식으로 위기에 대응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중에 돈이 마구 풀리자 마르크화의 가치는 당연히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한 달 사이 물가가 50%나 상승하게 되는 초인플레이션의 단계에 진입합니다. 하지만 극단적인 국외 자본이탈과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서로 반복되면서 돈의 가치는 더욱 더 하락하고 역설적으로 돈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때문에 바이마르 정부는 계속 돈을 찍어낼 수밖에 없게 됩니다.
당시 바이마르 공화국이 처한 경제 위기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1922년~1923년까지 일년 사이 달러대비 마르크화는 99%가 하락했고 물가는 무려 3,870억% 상승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독일에서는 60억 마르크에 달하는 돈이 독일 경제에 유통되었는데, 1923년 10월 말에는 이 돈을 가지고도 1kg 호밀빵 한 덩어리밖에 살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독일인중에 억만장자가 아닌 사람은 없었지만 이들이 가진 전 재산으로도 빵 하나밖에 살 수 없었습니다. 이후 연합국들은 독일의 이런 상황을 감안하여 배상금 비중을 크게 줄여줬습니다. 1923년에 비해 90% 이상 부채 상환 비용이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여전히 많은 부채를 상환해야 했고, 장기간에 걸쳐 분산해서 채무를 이행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시 독일의 이러한 암울한 상황이 계속되자 히틀러는 1924년 5월 쿠데타를 일으켜 성공하게 됩니다. 역설적으로 이 시기는 독일이 최악의 경제 상황을 벗어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또한 독일의 초인플레이션과 반대로 극심한 디플레이션을 겪던 미국 경제 대공황의 여파로 독일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고,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됩니다. 만약 독일이 이러한 경제 위기를 겪지 않았더라면, 히틀러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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