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달의 독서 산책

{초예측, 부의 미래} 세계 석학 5인이 말하는 기술 자본 문명의 대전환, 자유 시장은 ‘신화’ , 자본주의는 ‘종교’와 같다. - 유발 하라리

꿈달(caucasus) 2022. 3.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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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예측, 부의 미래} 세계 석학 5인이 말하는 기술 자본 문명의 대전환

/ 유발하라리, 스콧 갤러웨이, 찰스 호스킨슨, 장 티롤, 마르쿠스 가브리엘 공저

/ 자유 시장은 ‘신화’ , 자본주의는 ‘종교’와 같다. -유발 하라리

 

여러분 ‘평생학습’ 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 같아요.

요즘 세상은 기술의 발전 속도도 빠르고, 트렌드도 금방 바뀌기 때문에 항상 배움의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배움을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다양하지만 저는 그 중에서도 독서가 가장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유튜브나 스마트폰 앱으로 학습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책을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서너개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는데요. 한 개의 책을 완독하는 것도 좋지만, 성격상 서너개의 책을 동시에 읽는 것이 즐겁더라구요. 여러 주제에 흥미가 생기면 참지 못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읽기 시작한 책은 바로 {초예측, 부의 미래}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28세에 독일 본 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천재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이 NHK 다큐멘터리 〈욕망의 자본주의 2019〉에서 5명의 석학들과 진행한 인터뷰를 엮은 것입니다.

 

 

우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역사가인 유발 하라리, <플랫폼 제국의 미래> 의 저자이자 뉴욕 대학교 스턴 경영대학원의 교수인 스콧 갤러웨이, 암호화폐 선구자로 1세대 비트코인, 2세대 이더리움의 뒤를 잇는 3세대 카르다노의 개발자 찰스 호스킨슨,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중 한 명으로 201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장 티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철학자 마르쿠스 가브리엘입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이 뛰어난 5명의 석학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부와 권력의 흐름을 통찰하며 미래를 적극적으로 사유할 즐거운 시간을 선사합니다. 저는 지금 초반부 유발 하라리의 <현대 자본주의 앞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는가?> 편을 읽고 있는데,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짧고 명쾌하게 서술하는 유발 하라리의 필력과 그의 식견에 감탄을 금치 못합니다.

 

 

유발 하라리는 자유 시장을 일종의 신화라고 보고 있으며, 자유 시장을 유지하는 시스템인 자본주의를 종료라고 비유합니다. 자유 시장=신화, 자본주의=종교 라니... 이게 대체 무슨말일까?

 

극단적인 자본주의자들에 따르면, 자본주의란 경제나 사회가 잘 기능하도록 이 세계에 내재한 자연적인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유발 하라리는 자본주의를 지난 수백 년 사이에 인간이 창조해낸 하나의 제도, 즉 ‘상상의 질서’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이란 자연스럽지도, 영속적이지도 또 현실에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열렬한 시장주의자들은 시장의 힘이 자유로이 제 갈길을 가게 내버려두라고 말합니다. ‘정부에 의한 규제는 불필요하다’, ‘자유 시장 속 개개인의 경쟁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최선의 결과를 낳는다’는 주장을 계속 펼치죠.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자유 시장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모든 것이 붕괴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시장은 혼자서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습니다. 사기, 폭력, 도둑질로부터 재산권을 보호해주는 법이 있고 이를 집행하는 사법 기관이 존재해야 공정한 거래가 이뤄지고 사업이 번창할 수 있어요.

 

그러므로 모든 정치적 판단과 법적 고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 같은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신화’ 입니다. 오히려 시장은, 법과 정치의 일부로서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면 그 정체는 무엇일까?

유발 하라리는 자본주의는 일종의 종교와 같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신념을 종교와 이데올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종교를 정의할 때, 신의 존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 종교란 어떤 이야기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는 규범과 가치 체계입니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신 대신 사회 조직이나 정치 질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규범과 가치를 숭배한다면 충분히 종교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 자본주의는 확실히 종교가 됩니다. 자본주의는 경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지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 제도 자체가 목표로서 추구할 가치를 갖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줍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곧 종교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특히 경제 성장은 자본주의 교리의 핵심입니다. 공산주의든 사회주의든 민주주의든 혹은 유대교 국가는 힌두교 국가든 기독교 국가든 간에, 오늘날 전 세계 나라 대부분이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막론하고 경제 성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는 더 많이 갖는 것이 정의와 자유, 행복을 증진시키고 골치 아픈 딜레마를 해결해줄 거라고 말합니다. 즉 경제 성장이야말로 거의 모든 문제에 적용 가능한 만능열쇠이자 만병통치약인 셈이죠. 따라서 성장 신조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무시되거나 해체되거나 파괴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동력이자 엔진은 바로 인간의 ‘욕망’입니다.

정체된 경제를 전제로 하는 전근대에는 사회 평화를 위해서라도 개개인의 욕망이 제어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해서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믿음은 욕망에게 다른 역할을 부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산업혁명은 새로운 에너지원과 값싼 원자재를 이용해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향상시켰습니다. 하지만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누군가는 사야죠. 필요 이상으로 물건을 생산하는 경제시스템에서 기업들이 망하지 않으려면 필요 없는 물건을 원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필히 인간의 욕망을 증폭하도록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욕망을 전제로 합니다. 쉽게 말해, 욕망은 자본주의의 '엔진' 입니다.   

자본주의 제도 자체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시스템이지만, 우리의 욕망은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이고 사치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이미 멀쩡하게 굴러가는 자동차가 있더라도, 우리는 더 크고, 더 예쁘고, 더 첨단인 자동차에게 마음을 뺏깁니다. 이처럼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시장은 이미 나온 제품을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냅니다.

 

광고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것이 곧 행복이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부추깁니다.

광고업계가 하는 일이란, 그 99퍼센트가 결국은 없었던 욕망을 새롭게 만들어내거나 이미 존재하는 욕망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는 줄 몰랐던 상품들의 광고를 보고 나면 갑자기 매력적으로 보이고 왠지 필요한 것 같죠. 막 갖고 싶어져요. 갖지 못하면 비참한 마음마저 듭니다. 광고의 설득은 아주 효과적이어서 우리를 열성적인 소비자로 만듭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스스로의 욕망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일까? 🤔

인류 역사상 많은 종교가 출현했고 각각은 나름의 정신적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불교의 중심 과제가 바로 이 욕망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순간적인 쾌락을 끝없이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끝끝내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욕망에 지배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방법을 찾으려 한 것이죠.

 

문제는 이런 종교 철학의 가르침과 기도, 명상, 선행 등의 수행을 통해 스스로 욕망에서 해방되어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할지라도, 당신은 그저 한 개인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사회 전체의 욕망을 억제하려면 다른 수백만 명의 낯선 사람들이 뜻을 함께해야 합니다. 이게 과연 가능할까요?

 

이런 시스템이 실제로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드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삶의 만족도는 소유나 부의 양 같은 객관적인 기준에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것은 자본주의보다는 인간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행복은 주관적인 기대의 실현 여부에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데 성취했을 때의 짜릿함과 유쾌함은 순식간에 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쾌감을 갈구합니다.

 

 

물론 한도 끝도 없는 욕망은 인류 역사의 원동력이었고, 덕분에 우리는 석기 시대의 선조들에 비해 수천 배나 더 큰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힘을 행복으로 전환하는 데 그리 능하지 못했어요. 인류는 확실히 강해졌지만, 삶이 더 만족스럽고 행복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현대 자본주의 앞에는 어떤 미래가 기다리는가?>를 이야기하는데 앞서, 도입부에서 자본주의의 정체와 그것의 엔진이자 동력이 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명쾌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

 

이제 막 책의 도입부만 읽었을 뿐인데, 나머지 내용들도 너무 기대가 됩니다.

자유 시장이니 자본주의니 어렵게만 느껴졌던 개념들이 유발 하라리가 풀이해주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물론,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평소 잊고 지내던 철학적 이야기를 진지하게 읽고 있으니 머릿 속이 뜨거위지면서 뭔가 지식이 쌓이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합니다. 다음에도 좋은 내용이 있으면 또 포스팅해서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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