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치 철학자인 존 롤스(John Rawls, 1921~2002)는 그의 저서,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 에서 ‘최소 극대화(maximin)’ 라는 정의의 원칙을 이끌어내기 위해 ‘무지의 베일(장막)’ 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무지의 장막이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마치 베일로 가려진 듯이 서로의 신분과 사회・경제적 지위, 능력, 가치관, 목표 등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상태를 말합니다.
롤스는 정의의 원칙을 이끌어내기 위해 사회의 구조와 운영, 자원 배분의 원리 등에 관해 구성원들이 어떠한 합의도 이루지 않은 가상의 상황을 출발점으로 삼았는데, 이를 ‘원초적 상태(original position)’ 라고 불렀습니다.
홉스나 로크 등의 사회계약설에 나오는 자연 상태와 마찬가지인 원초적 상태에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저마다 이기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는 서로 협력하고 합의한다는 것입니다.
‘무지의 장막’ 과 관련한 프랑스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장 티롤 교수의 인터뷰 중 일부를 요약하면서 개인적인 생각을 첨언 해서 올립니다. 출처는 {초예측, 부의 미래 (2020.4) / 웅진 지식하우스} 입니다.
누구나 평등한 사회를 꿈꾸지만, 정작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부는 선천적인 능력이나 타고난 배경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난다고... 집안의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도 스스로 자수성가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런 경우도 점차 줄어드는 모양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무지의 장막은 모든 조건을 ‘백지화’ 하고 생각해보자는 일종의 사고 실험입니다. {정의론, A Theory of Justice} 으로 유명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무지의 장막에 싸인 상태에서 정의의 원리가 도출된다고 말했습니다.
가령 당신이 아직 그 누구도 아니라고 상상해보세요.
당신은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정해진 건 없습니다. 집이 가난할지 넉넉할지, 당신이 엘리트 가문에서 태어날지,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날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미국인이나 중국인처럼 큰 나라에서 태어날지, 작은 나라에서 태어날지,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다수파에 속할지 소수파에 속할지 등도 결정되지 않았지요. 성적인 지향도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상황이라면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녀가 평등한 사회, 소수 민족이나 소수파 종교에게 차별과 불이익이 없는 사회를 바랄 것입니다. 또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빈민이 존재하는 사회보다는 소득이 골고루 분배되는 사회를 선호할 것이고, 공적건강보험 제도가 있어서 누구나 아프면 병원에 가는 사회가 좋다고 느낄 것이며, 시장의 독점을 해소하는 정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원래대로라면 기득권을 잃기 싫어 성평등 정책에 반대했을 남성이라도 무지의 장막 아래서는 평등을 주장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이처럼 무지의 장막이라는 사고 실험은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목표를 정하는 데 용이합니다. 경제학자는 그 실현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무지의 장막’ 은 아주 매력적인 아이디어지만 이를 근거로 현실정치에서 정의로운 분배를 주장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지금 당장 누리고 있는 사회적 지위와 기득권을 기꺼이 내려놓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무지의 장막’ 이라는 개념이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 개념은 사람들에게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시야를 넓혀주기 때문입니다.
무지의 장막은 교육적인 관점에서도 유용합니다. 이 개념은 생각의 깊이를 높여줍니다.
흔히 우리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확증편향의 오류’ 라고 부르지요.
사람들은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본질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정치인들은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합니다. 첫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식은 공공의 의사 결정에 아주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후보자가 내세우는 정책이나 이해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투표한다면 민주주의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장은 훌륭한 장치입니다. 하지만 외부효과, 불평등, 독점, 정보 비대칭 등 시장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애초에 결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시장을 설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드러났을 때 정부 행정이 시의 적절하게 개입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시장은 잘 기능하고 있지만, 수정하면 분명 더 잘 기능할 겁니다.
- 초예측, 부의 미래(2020.4, 웅진지식하우스) / 장 티롤 교수의 ‘좋은 사회를 만드는 새로운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인터뷰 중 일부를 요약, 제 개인적인 생각을 일부 첨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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