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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불용설을 주장한 비운의 생물학자, 라마르크 (feat. 후성유전학의 태동)

꿈달(caucasus) 2024.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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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바티스트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 / 1744.8.1. ~ 1829.12.18.)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 1744.8.1. ~ 1829.12.18.)프랑스 출신의 생물학자로 후천적으로 얻은 형질이 유전된다는 ‘용불용설(획득한 형질의 유전)’을 주장했다.

 

 

그는 다윈보다 앞서서 진화론을 주장한 사람이다. 오늘날 여러 교과서에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전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퇴화한다는 가설)을 ‘획득형질의 유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한다. 용불용설은 흔히 다윈의 자연선택설과 대비되는 학설로 소개되지만 실제로 다윈은 용불용설을 반대하지 않았다.

 

 

다윈이 라마르크의 진화론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윈이 보기에 라마르크는 진화를 입증하는 실제 사례를 적절히 제시하지 못했고 그가 주장한 진화설 역시 근거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획득형질의 유전은 사실 19세기에 다윈을 포함한 다수의 지식인들이 믿던 꽤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1859년 종의 기원 초판에서 다윈은 집오리가 야생오리에 비해 날개는 짧지만 다리가 더 길고 비행거리는 짧지만 보행거리는 더 길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미지 출처: 과학동아

 

 

 

가축이 자주 사용하는 기관이 발달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이 같은 기능이 약화되며, 이런 변화가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고 말한 것이다. 다윈은 획득형질의 유전을 설명하기 위해 독창적인 유전 이론을 만들기도 했다. 1868년에 출간한 ‘가축 및 재배 식물의 변이’라는 저서에서 그는 체세포가 ‘제뮬’이라고 불리는 유전 입자를 방출하면 이 입자가 생식을 통해 다음 세대로 전달된다는 범생설을 발전시켰다.

 

 

이에 따르면 자주 사용해 발달한 기관의 체세포로부터 나온 제뮬이 생식 과정에서 혼합돼 다음 세대로 전달되면서 획득형질의 유전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1872년에 출판된 종의 기원 제6판은 한발 더 나아가 획득형질의 유전을 진화의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로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서 다윈은 비판자들이 자신의 이론이 진화의 유일한 원인으로 자연선택만 주장하는 것으로 왜곡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다윈이 라마르크의 진화론을 거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보편적이던 용불용설은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윈은 자신의 자연선택 중심의 진화론에 용불용설을 통합시키기 위해 유전 이론을 고안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용불용설을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기린은 목이 길다. 높은 나무에 있는 풀을 먹기 위해 목을 더 내밀다 보면 목은 점점 길어질 것이다. 이렇게 길어진 목은 유전된다. 진화를 설명하기에 더없이 좋은 이론이다. 하지만 그가 용불용설을 발표했을 때 그의 이론은 주목받지 못하고 조롱만 당했다. 결국 그가 사망하던 1829년, 그의 딸이 장례식장에서 “세월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후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다시 주목받게 된다. 하지만 DNA, 유전자의 등장과 함께 용불용설은 과학적으로 ‘틀린 이론’으로 확인되었다. 이를 쉽게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훌륭한 야구선수(투수)가 있다고 하자. 이 선수가 만약 왼속잡이 투수였다면 그의 왼팔은 오른팔보다 확실히 길 것이다. 당연히 왼팔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선수가 결혼 후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아이의 왼팔은 오른팔보다 길지 않다. 즉 살아가면서 얻게 된 형질(신체적 특징)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은 DNA, 유전자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린이 목이 긴 이유는, 높은 나무에 있는 풀을 먹을 수 있는 기린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생존에 유리한 기린이 자기 유전자를 후세에 많이 전달할 수 있었고,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목이 긴 기린이 많아진 것이다. 목을 내밀면서 길어진 목이 유전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이러한 고정관념이 변하기 시작했다. 후천적으로, 즉 우리가 태어난 뒤 한 어떤 행동들이 유전자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유전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하나둘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또한 DNA는 그대로인데 어떠한 이유에서 그게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쉽게 이야기하면 파란색 눈동자를 가진 부모님에게 관련 유전자를 물려받았는데, 눈이 파란색이 아닌 것이다. 이를 연구하는 학문을 후성유전학이라고 한다.

 

 

* 후성유전학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를 들어 보자. 사이언스에 실린 어느 논문에 따르면 먹이 섭취가 부족한 암컷 생쥐에서 태어난 새끼들은 평균보다 낮은 몸무게를 가지고 태어난다. 당연하다. 이러한 쥐가 정상적으로 자란다고 하더라도, 이 쥐에게서 태어난 3세대 쥐의 대사질환율은 증가한다.

 

 

* 에모리 대학의 연구팀은 쥐에게 벚꽃 냄새를 흘려줄 때마다 공포를 느끼도록 훈련했다. 이 쥐에게서 태어난 새끼들 역시 벚꽃 냄새를 맡으면 공포를 느꼈다. 후천적으로 얻은 특징이 유전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 사람도 마찬가지다. 1944년 9월 독일군이 네덜란드 북서부 지역을 지배하면서 식량을 봉쇄했다. 결국 이 지역 사람들은 기근에 시달렸는데, 이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출생 전 기근을 겪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했을 때 비만, 고혈압, 당뇨에 걸릴 확률이 두배나 높아졌다고 한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사람들의 트라우마 역시 유전된다는 연구가 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 자녀의 유전자를 살펴봤더니 스트레스 장애 위험이 상당히 컸다고 한다. 부모가 후천적으로 경험한 스트레스가 자식에게 대물림된 것이다.

 

 

* 흡연도 영향을 미친다. 흡연자의 경우 정자의 DNA가 비정상적으로 발현,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흡연하지 않은 아빠의 정자로 태어난 아이와 비교했을 때 비만, 당뇨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기도 한다. 또한 뇌 기능 저하를 불러오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전이란 DNA에 의해서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라마르크가 주장한 용불용설은 결국 틀린 이론이다. 하지만 생전에 경험한 공포나 트라우마, 또는 어떤 습관이나 환경적 요인이 DNA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따라서 용불용설은 진화나 유전에 대한 연구에서 중요한 힌트 또는 인사이트를 제공한 역할을 한 셈이다.

 

 

한 세대에 특정하게 나타난 형질이 대를 거쳐 유전될 수 있다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 태동하면서 그의 개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후성유전학에 따르면 DNA 염기서열이 변하지 않아도 특정 형질이 나타나거나 발현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특정한 세대에 출현한 형질이 2~3세대 정도 대를 이어 유전될 수 있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과 유사하다. 용불용설은 틀렸지만 후성유전학적 측면에서 특정 형질이 다음 세대에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획득한 형질이 유전된다는 라마르크의 주장과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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