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오래된 도자기 우표(1960~70년대), 현재 가격은 얼마나 될까?

꿈달(caucasus) 202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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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로 모아온 우표를 보다가 오래된 도자기 관련 우표들을 소개해봅니다. 아래 그림의 도자기 우표들은 1960년~1970년대에 나온 우표들입니다.

 

당시 액면가가 첫 번째 우표는 60이라는 숫자 뒤에 00이라는 숫자에 밑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이게 액면가로 얼마를 뜻하는 것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60원일 듯 싶네요. 두 번째와 세 번째 우표는 각각 20원입니다.

 

 

 

 

 

우선 첫 번째 우표는 1966년에 발행된 ‘연당초문 수병’이 인쇄된 우표입니다.

 

구글 검색을 해보니 1200원에 거래하겠다는 글도 있고, 어떤 사이트에서는 무려 16000원에 거래한다고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단순히 액면가로 계산하면 20배~800배 가치가 상승했네요.

 

 

 

 

이 우표는 인쇄되어 있는 ‘연당초문 수병’은 위에 주전자와 받침이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우표에는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상단 주전자 부분에 #투각 된 것이 연꽃과 어린이 형상입니다.

 

 

우표 제목에 ‘연당’은 아래 받침 부분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연당은 ‘연꽃이 핀 연못’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청자투각연당초문수병’을 풀이하면, ‘투각 기법이 사용된 청자에 연꽃과 동자의 무늬를 한 주전자’라는 뜻이며, 이를 받치고 있는 연당 받침은 따로 설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 투각: 재료를 완전히 뚫거나 도려내어 표현하는 조각 기법.

 

 

 

다음 우표는 1969년에 발행된 ‘고려청자 수병’이 인쇄된 우표입니다.

 

이 우표를 구글 검색해보니 5000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액면가로 단순 계산하면 250배의 가치 상승이 있었네요.

 

 

 

 

이 우표에 그려진 ‘고려청자 수병’ 의 정확한 명칭은 검색이 어렵네요. 고려청자라 함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청자를 뜻합니다. 청자란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도자기 가운데 가장 훌륭한 도자기 중 하나입니다. 중국의 송나라, 우리나라의 고려시대에는 청자가 세계 최고의 도자기였습니다. 당시에 이렇게 훌륭한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고려와 송나라 밖에 없었습니다. 이 우표에 그려진 청자는 #상감기법을 활용한 것으로 술병으로 쓰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생활에서 술병으로 사용했을지도 모르지만, 제 의견으로는 아마도 장식용으로 쓰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 상감기법: 원래의 기물에 홈을 파서 다른 재료를 넣는 것. 청자 겉면을 얇게 판 다음 학이나 꽃의 모습에 맞게 백토나 자토를 그곳에 넣는다. 그러면 구워진 후에 백토는 흰색으로, 자토는 검은 색으로 나온다. 우리 청자에 나오는 많은 이미지들은 바로 이 기법으로 만든 것이다.

 

 

 

마지막 우표는 컬러감이 살아있는 우표로, 1977년에 발행된 ‘백자상감유로모란매병’ 이 인쇄된 우표입니다.

 

이 우표 역시 구글 검색을 해보면 5000원에 거래하겠다는 글이 나옵니다. 액면가 기준으로 250배 가치 상승입니다.

 

 

 

 

1977년에는 우표에 컬러감이 들어가 우표가 더욱 세련되고 멋있어졌습니다. 이 우표에 그려진 술병은 ‘백자’입니다. 백자는 고려 초기부터 청자와 함께 일부가 만들어졌으며, 그 수법은 계속 이어져 조선시대 도자기의 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청자와 백자에 관한 오해 중 하나는 청자가 미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백자보다 우수한 그릇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청자가 워낙 아름다운 그릇이다 보니 그런 선입견이 생긴 것 같은데, 사실은 미학적으로는 몰라도 적어도 기술적으로는 백자가 청자보다 앞선 그릇이라고 합니다. 조선이 백자를 주요 그릇으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백자가 청자보다 더 우수한 그릇이었기 때문입니다.

 

 

청자와 백자 사이의 차이는 우선 흙에 있습니다. 청자나 백자나 고령토라 불리는 백토 혹은 자토(瓷土)로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이나, 백자 흙은 청자 흙보다 순도가 더 높은 흙이라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굽는 온도도 백자가 청자보다 조금 더 높습니다. 유약도 백자 것이 더 낫습니다. 청자를 보면 유약을 칠한 그릇 표면에 미세한 금이 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백자에는 이런 균열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유약에 잡물이 제거되어 있어 균열이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백자가 단지 청자보다 앞선 그릇이었기 때문에 조선조 때 유행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념적으로도 조선과 어울렸습니다. 물론 이것은 중국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당시 중국(명)은 송 대에 일어난 성리학이 국시(國是)가 되면서 유학이 부흥하게 됩니다.성리학에서는 밖으로 화려하게 드러내기보다는 내적인 청결을 중시하고 질박하고 검소한 삶을 더 중시합니다. 그래서 조선의 유물 중에는 화려한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러한 세계관에 백자는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백자에는 단순, 소박, 생략감이 있고 더 나아가서 여유와 익살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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