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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시대, TC 본더 쟁탈전 심화: 승자는 누가 될까

꿈달(caucasus) 2025.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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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1위 고대역폭 메모리(HBM) 기업인 SK하이닉스와 오랜 기간 핵심 장비인 TC 본더를 독점 공급해 온 한미반도체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2017년부터 TC 본더 공급을 시작하며 끈끈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두 회사 사이에, 지난달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과 420억 원 규모의 TC 본더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성능 향상에 필수적인 HBM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TC 본더의 중요성 또한 커지고 있는 가운데 벌어진 이번 사태는 반도체 업계의 복잡한 역학 관계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HBM 시대, 핵심 장비 TC 본더란 무엇인가?

 

이번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HBM과 TC 본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일반적인 메모리보다 훨씬 많은 양의 데이터를 한 번에 빠르게 전송할 수 있는 고성능 메모리이다. 마치 여러 개의 넓은 고속도로를 한 번에 이용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HBM은 방대한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AI 반도체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꼽히며, 최근 그 중요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HBM은 여러 개의 D램 칩을 수직으로 쌓아 올려 만드는데, 이때 각 칩들을 전기적으로 연결하고 물리적으로 결합시키는 핵심 장비가 바로 TC 본더(Thermal Compression Bonder)이다. TC 본더는 열과 압력을 가하여 여러 층의 D램을 정밀하게 접합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며, HBM 생산 공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장비이다.

 

 

 

 

‘슈퍼을’의 분노: 한미반도체의 강경 대응

 

SK하이닉스와 오랜 기간 독점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한미반도체는 이번 한화세미텍과의 계약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 대응 수위 또한 매우 이례적이다. SK하이닉스 이천 공장에 파견되었던 수십 명의 고객 서비스(CS) 엔지니어를 철수시키는가 하면, 그동안 무료로 제공했던 장비 유지 및 보수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심지어 TC 본더의 가격을 25%에서 28%까지 인상하겠다는 통보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반도체가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8년 동안 TC 본더 가격을 동결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SK하이닉스가 경쟁사인 한화세미텍으로부터 훨씬 높은 가격에 장비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유지해 온 것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자사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에 대한 불신으로 느껴졌을 수 있다. HBM 시장의 성장으로 TC 본더의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독점적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 또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슈퍼을’ 달래기에 나선 SK하이닉스

 

갑작스러운 한미반도체의 강경 대응에 SK하이닉스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진화에 나섰다.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이 직접 한미반도체 본사를 방문하여 협상을 시도하는 등 사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 한미반도체는 오랜 기간 협력해 온 검증된 파트너이기에 쉽게 관계를 끊을 수 없을뿐더러, HBM 생산에 필수적인 TC 본더의 안정적인 공급 또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미반도체는 장비 납품 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슈퍼을’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공급처 다변화는 당연한 수순? SK하이닉스의 입장

 

물론 SK하이닉스 입장에서도 억울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특정 공급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2~3개의 공급사를 두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SK하이닉스 역시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공급처 다변화를 추진했을 가능성이 높다. 복수의 공급처를 확보하면 한 곳의 생산 라인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으며, 가격 협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미반도체가 더욱 격분하는 이유: 불편한 경쟁자와의 거래

 

하지만 한미반도체가 이번 사태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에는 단순한 ‘독점적 지위 상실’ 이상의 이유가 있다. SK하이닉스의 새로운 TC 본더 공급처가 바로 경쟁사인 한화세미텍이기 때문이다. 한미반도체는 이미 지난해 12월, 자사의 특허 기술을 침해했다며 한화세미텍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뿐만아니라, 2021년에는 한화세미텍으로 이직한 전 직원을 상대로 부정경쟁행위금지 소송을 제기하여 1심과 2심 모두 승소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쟁 관계를 넘어 ‘원수’처럼 여기는 회사로부터 SK하이닉스가 장비를 공급받기 시작했으니, 한미반도체 입장에서는 더욱 강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든든한 ‘뒷배’ 마이크론과 삼성전자의 존재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한미반도체 역시 SK하이닉스에만 매달릴 필요가 없는 상황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이 지난해 4월부터 한미반도체로부터 TC 본더를 대량으로 공급받기 시작했으며, 이미 올해 4월까지 작년 한 해 동안 구매한 물량(약 30~40대) 이상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미반도체에게 SK하이닉스 외에도 안정적인 매출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아니라, 10년 넘게 관계가 소원했던 삼성전자와도 최근 주요 제품 납품을 협의하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다. 만약 삼성전자와의 협력이 본격화된다면,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낮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HBM 시장의 또 다른 거대 고객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TC 본더 시장, 더욱 치열한 경쟁 예고

 

이러한 갈등 속에서 유일하게 웃고 있는 것은 한화세미텍일지도 모른다. SK하이닉스는 올해 60~80대 가량의 TC 본더를 추가로 구매할 계획인데, 업계에서는 이 중 30대 이상을 한화세미텍이 공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물론 SK하이닉스가 실제 TC 본더 수주 물량을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따라 한화세미텍의 실제적인 수혜 규모와 이번 갈등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한편, 갈등이 심화되자 한미반도체는 지난 4월 22일로 예정되었던 기업설명회(IR)를 1분기 실적 발표일인 5월 15일 이후로 연기했다. 이는 최근의 갈등 국면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관심이 지나치게 집중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번 SK하이닉스와 한미반도체 간의 갈등은 HBM 시장의 성장과 함께 TC 본더 시장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TC 본더 시장 규모는 2024년 4억 6,100만 달러(약 6,500억 원)에서 2027년 15억 달러(약 2조 1천억 원)로 3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TC 본더 시장 점유율 70%를 차지하고 있는 한미반도체가 앞으로도 시장의 강자로 남을 수 있을지, 아니면 한화세미텍을 비롯한 경쟁 업체들의 도전이 거세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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