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달의 독서 산책

묘한 존재 _ 이희승 선생님 (1946년 서울 신문 기고문)

꿈달(caucasus) 2020.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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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존재 _ 이희승 선생님 (1946년 서울 신문 기고문)

 

주말에 이희승 선생님의 수필집 <딸깍발이>를 읽었습니다. 딸깍발이는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 읽었던 수필이라 낯이 익습니다. 이 외에도 수십여편의 짧은 수필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 이희승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문체가 담백하면서 여러 분야에 박학다식한 선생님의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또한 사물과 현상에 대해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문장으로 그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탄식과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ㅎㅎ

 

 

이희승 선생님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까지 시대의 흐름을 목격하셨던 분이기에 그분의 글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어 과거의 분위기도 느낄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희승 선생님은 광복 이후 우리나라의 국문학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대단하시지요. 일제강점기 시절에 유명한 <조선어학회 사건> 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시도 하였답니다. 동료들은 모진 고문을 못이겨 돌아가신분도 많았는데 천만다행으로 이희승 선생님은 해방이 되어 풀려나시게 되었답니다. 우리나라 한글맞춤법의 기틀을 다지는데 이바지하셨고, 이승만 정부의 독재에 반대하여 민주화 항쟁에도 적극 참여하셨던 아주 존경스러운 분이세요. 평생동안 지조를 굽히지 않고 우리나라의 국어발전에 이바지 하셨던 분입니다. ^^

 

 

수필집 딸깍발이를 읽던중에 이희승 선생님께서 사람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다룬 짧은 수필을 쓰신게 있으신데 너무 맛있는(?) 글이어서 올려봅니다. 제목은 <묘한 존재> 이고 1946년 서울 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1946년이니까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 일년이 조금 안되서 쓰신 글이네요. 그렇다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중에 풀려나시고 얼마 지나서 쓰신 글입니다. 감옥에서 투옥생활을 하시면서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그분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그리고 광복 이후 이승만을 비롯한 세속화된 정치인들의 이합집산과 권력 다툼으로 인해 혼란했던 당시의 시대상이 글 속에 반영되어 있는 듯 합니다. 


묘한 존재 _ 이희승 (1946, 서울신문)

 

사람이란 대체로 묘한 존재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우선 묘하고,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이 묘하고, 그러면서도 무엇을 생각하려고 하는 것이 묘하고, 백인백색으로 얼굴이나 성미가 각각 다른 것이 또한 묘하다.

 

모르면 약이요 아는게 병인 데도 아는 체하는 것이 묘하고,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건만 다 뛰려고 하는 것이 묘하다.

 

 

제 앞에 죽어 가는 놈이 한없이 많은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저만은 영생불사할 줄 아는 멍텅구리가 곧 사람이요, 남 곯리는 게 저 곯는 것이요, 남 잡이가 저 잡인줄을 말끔히 들여다보면서도 남 잡고 남 곯려서 저만 살찌겠다는 욕심장이가 곧 사람이다.

 

산속에 있는 열 놈의 도둑은 곧잘 잡아도, 제 마음속에 있는 한 놈의 도둑은 못 잡는 것이 사람이요, 열 길 물속은 잘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더니, 십년을 같이 지내도 그런 줄은 몰랐다는 탄식을 발하게 하는 것이 사람이란 것이다.

 

요것이 대체로 말썽꾸러기다. 차면서도 뜨겁고, 인자하면서도 잔인한 말썽꾸러기다. 내가 만일 조물주였더라면, 천지 만물을 다 마련하여도 요것만은 만들어 내지 않았을 것이 곧 사람이다. 

 

사람이란 묘한 존재다. 나 자신이 이런 소리를 하고 있으니, 사람이란 참 묘한 존재다. 알고도 모를 묘한 존재다.


이희승 선생님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평생동안 선비의 기개로 지조를 지키고 사셨던 당신의 기개가 느껴집니다. 선생님의 대표 수필인 <딸깍발이>에 나오는 선비의 지조란 다름 아닌 선생께서 평생 지키고 싶으셨던 신념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글 에서도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재치있고 날카로운 시선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잠시 은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묘한 힘도 있습니다. 다음에 선생님의 또 다른 좋은 수필을 올려보도록 할게요~ ^^*

 

이희승(1896~1989)

-국문학자, 문학박사. 호는 일석(一石)

시흥 출생. 경성제국대학 졸업. 조선어학회 사건에 관련, 구속되어 8.15 해방까지 복역. 이화여전 교수, 조선어학회 간사. 한글학회 이사. 서울대 문리과대학장, 대구대, 성균관대 대학원장. 동아일보 사장 역임. 저서로는 <국어학 개설>, 시집<박꽃>, 수필집<벙어리 냉가슴>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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