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결론은 흑백?
요즘은 차량 색상이 아주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주로 흑색이나 하얀색, 은색 정도였는데 요즘은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게 다양한 색상을 출시한다. 하지만 주위에서 신차를 보게 되면 여전히 흑백이 대부분인 것 같다. 왜 사람들은 자동차를 구입할 때 아직도 흑백 색상을 선호하는 것일까?
실제로 통계를 보면 여전히 흑백과 같은 무채색이 대세라는 게 나타난다.
이런 무채색 차량은 사실, 100년 넘게 인기를 끌고 있다. 1950년대부터 유채색 차량들이 영향력을 키웠지만 여전히 대세는 무채색이다.
무채색이 대세가 된 이유
20세기 초반까지 자동차에 다양한 색을 도입하는 것을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는 외관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자동차가 잘 달리게 만드는 기능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이다. 1900년대 자동차를 보면 철판, 나무, 가죽, 고무 등이 가진 원래 색상이 그대로 차체 컬러를 형성했다고 한다.
자동차에 컬러 개념이 도입된 것은 대량생산과 관련 있다.
1913년 헨리 포드는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자동차 대량생산(포디즘)을 도입해 세계 최초 국민차 ‘모델T’를 생산했다. 모델T는 1915년 이전까지는 차체를 검은색으로만 칠했다. ‘멋’보다는 구하기 쉽고 빨리 말라 작업하기도 편했으며 비포장도로에서 타기에도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에는 도장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 가지 색만으로 칠해야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그래서 흑색은 자동차를 대표하는 색상이 됐다. 검은색 모델T는 이후 도전에 직면했다. 경쟁브랜드였던 쉐보레에서 1924년부터 7가지 색상을 구비한 자동차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1930년에는 캐딜락 라살에 투 톤 컬러가 처음 도입됐다.
자동차에 컬러 혁명이 일어나다
자동차 색상은 1950년대에 이르러 도장 기술이 크게 발전하며 ‘컬러 혁명’을 가져왔다. 원색은 물론이고 분홍색과 금색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다. 글로벌 자동차회사들도 출신지에 따라 선호하는 색상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기계공학이 발달한 ‘쇠의 나라’ 독일에서 태어난 벤츠, BMW, 아우디는 쇠 색깔인 은색에 공을 들였다. 그래서 독일 차량을 대표하는 ‘저먼 실버’가 등장했다. 은색은 차가우면서 에지(edge)를 살려주는 효과도 지녀 고성능 차량에 제격이었다. 은빛 화살처럼 질주하는 벤츠 레이싱카를 ‘실버 애로우’라 부르기도 한다고...
프랑스 자동차회사들은 냉정하고 평온한 이미지를 지닌 파란색을 레이싱카에 즐겨 사용했다. 이 색상을 ‘프렌치 블루’라고 부른다.
영국 자동차회사들은 녹색을 선호한다. 재규어는 ‘브리티시 그린’으로 차를 치장한다. 미니(MINI) 클럽맨 그린파크도 브리티시 레이싱 그린 색상으로 레이싱에 대한 영국의 열정을 표현했다.
미국에서는 하얀 바탕에 파란색 줄을 넣은 아메리칸 스트라이프를 포드 머스탱 등에 사용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스포츠카 브랜드인 페라리는 빨간색인 ‘이탈리안 레드’로 열정을 상징한다.
그래도 대세는 결국 무채색
이렇게 나라마다, 민족마다 선호하는 색상이 다르고 파란색, 빨간색, 녹색이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대세는 결국 무채색이다. 어차피 결론은 흑백!
글로벌 자동차 보수용 페인트 기업인 엑솔타(AXALTA) 코팅시스템즈에서 입수한 2022년 글로벌 인기색상 보고서를 분석해보니, 여전히 흑백이 대세였다고 한다.
엑솔타는 1953년부터 매년 이 보고서를 발표해왔는데, 자동차 색상 분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녀서 신뢰성이 높다. 글로벌 인기색상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흰색 점유율은 무려 34%에 달했다. 전년보다 1%포인트 줄었지만 여전히 대세를 형성했다.
검은색은 21%로 전년보다 2%포인트 증가했다. 회색은 19%로 전년과 같았고, 은색은 8%로 전년보다 1%포인트 감소했다. 무채색을 대표하는 흰색, 검은색, 회색, 은색 4가지 색상의 점유율은 무려 82%에 달했다.
유채색 중에는 그나마 파란색과 빨간색이 명맥을 유지했다. 지난해 점유율은 파란색이 8%, 빨간색이 5%로 변동이 없었다. 갈색 및 베이지색은 2%로 전년보다 1%포인트 감소했다. 녹색과 노란색은 1%로 전년과 같았다.
대륙별로 살펴봐도 무채색 대세를 파악할 수 있다. 북아메리카에서는 흰색(30%), 회색(20%), 검은색(19%) 순으로 나왔다. 다만 파란색(11%)이 은색(9%)을 이겼다. 유럽에서는 회색(27%), 검은색(22%), 흰색(21%), 파란색(11%), 은색(10%)이 인기를 끌었다. 역시 파란색을 제외하면 모두 무채색이 상위권을 휩쓸었다. 아시아에서는 무채색 대표 4가지 색상이 나란히 1~4위를 기록했다. 흰색(40%), 검은색(21%), 회색(15%), 은색(7%), 파란색(6%) 순이다. 한국은 북아메리카·유럽과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흰색(34%), 회색(24%), 검은색(16%), 파란색(9%), 은색(4%) 순으로 인기를 끌었다. 파란색이 선전했지만 무채색 대세에 그 의미가 퇴색됐다.
왜 무채색이 잘 팔릴까?
자동차업계는 흰색, 검은색, 회색을 앞세운 무채색이 나라에 상관없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질리지 않는 매력’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보통 자동차를 새로 사게 되면 평균적으로 5년은 타게 되는데, 화려한 유채색보다는 쉽게 질리지 않은 ‘무난한 무채색’을 고르는 경향을 크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동차 제조사가 잘 팔리고 생산관리도 쉬운 무채색 색상 위주로 외장 컬러를 선택하도록 암묵적으로 강요한 게 영향을 줬다는 주장도 있다.
보통 흰색은 차를 깔끔하면서도 더 크게 보이는 효과를 지녔다. 흰색 선호도가 높아진 이유를 ‘애플 효과’에서 찾기도 한다. 흰색은 예전에는 냉장고나 화장실 타일 등과 연결됐다. 애플이 흰색을 제품에 많이 사용한 뒤에는 훨씬 가치 있는 색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은색이나 회색은 튀지 않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외관 디자인도 돋보이게 만든다. 검은색은 안정감, 강직함, 무게감, 중후함 등의 이미지를 지녔다. 고급차, 대형차 구매자들이 선호하는 색상이다.
그래서 무채색 선호는 중고차 시장에서도 통한다. 중고차는 불특정 다수에게 판매하는 상품이다. 그래서 결국 무난해야 잘 팔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때문에 중고차 시장에서도 무채색 차량들이 더 잘팔린다. 더 잘팔리기 때문에 가격도 좀 더 쳐준다. 국내 최대 규모 자동차 유통 플랫폼인 엔카닷컴 조사에서도 현대차 LF 쏘나타의 경우 흰색 차량이 하늘색 차량보다 355만원, 담녹색 차량보다 75만원 시세가 높게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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