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녹색에 대한 불편한 진실(조용한 살인자 셸레 그린)

꿈달(caucasus) 2023. 6.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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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우리들에게 어떤 상황이나 상태를 나타낼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빨간색은 위태로운 상황을 경고하는 대표적인 색이다. 또한 노란색 역시 경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레이싱 경주로에서 노란색 깃발은 선수에게 사고 또는 위험 상황을 알려준다.

 

 

동물의 경우는 어떨까? 개구리의 밝은 피부색과 스컹크의 선명한 줄무늬 색은 자신이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다른 포식자에게 경고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도구였던 색깔이 오히려 우리를 위험에 빠뜨린적은 없었을까?

 

 

1820년~1870년까지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유례가 없을 만큼 자연에 심취해 있었다.

린바버(Lynn Barber)는 자신의 저서 《박물학의 황금시대/The Heyday of Natural History》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중산층 거실에는 수조, 양치식물 수집함, 나비 박제 보관함, 해조류 모음집, 조개 수집함 등 박물학과 관련된 흔적이 가득했다.”

 

 

당시 사람들은 자기 소장품을 늘리기 위해 시골과 해안가를 뒤지고 다녔다. 실내 장식가들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디자인을 시장에 내놓았다. 고리버들 의자나 주철로 된 테이블 다리에 자연 문양을 새겨 넣기도 하고 흩날리는 꽃잎과 초목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는 가구 덮개와 카펫을 제작했다. 벽지에도 온갖 종류의 꽃무늬 패턴이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1820년~1870년 영국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초록색에 심취해 있었다.

 

벽지에는 자연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주는 초록색 계통이 주로 사용되었다. 마치 새로 자란 이끼나 공작고사리, 볏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 <마시그라스/marsh grass>를 보는 듯했다. 그야말로 집 안에 자연을 들인 형국이었다.

 

 

자연의 색상을 구현해내는 제조업자들은 여러 가지 염료와 재료를 사용해 실험을 거듭했다. 좀 더 새롭고 매혹적인 초록색을 만들어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다. 사람들이 가장 탐내는 초록색은 <셸레 그린/Scheele's Green>이었다.

 

 

1775년, 스웨덴의 과학자인 <칼 빌헬름 셸레>는 비소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녹색의 화합물인 비산구리를 발견했다. 「컬러의 말」의 저자,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에 따르면 비산구리는 “살짝 지저분한 완두콩의 녹색”이었지만 셸레는 자신이 발견한 녹색의 상품성을 즉각 깨달았다. 녹색 안료와 염료에 목마른 시장에서 그가 발견해낸 비산구리는 그야말로 미다스의 손처럼 보였다. 이에 셸레는 비산구리의 대량생산에 들어갔고 셸레의 녹색은 스웨덴을 포함해 유럽과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셸레 그린 색상이 들어간 당시 벨벳 벽지의 디자인

 

 

산뜻한 느낌을 주는 이 호화로운 색은 거실, 주방, 심지어 욕실까지 생명을 불어넣었다.

셸레 그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부유층에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 원인을 알수 없었지만 한 내과의가 강한 의지로 끈질기게 조사한 결과, 원인이 벽지에 있음이 밝혀졌다. 특히 초록색 솜털무늬벽지(flock wallpaper)가 문제였다. 벨벳 질감을 내기 위해 폐기된 모직물로 만든 분말을 붙인 것이다.

 

 

이후, 셸레 그린에 비소의 함량이 엄청났다는 것도 밝혀졌다. 공기 중 색소 분말과 유독 가스에 노출되어 사람들 생명을 위태롭게 한 것이다. 노인층과 아이들은 독성에 특히 취약했다. 

 

 

<마틸다 셰러>라는 조화 제조공은 셸레그린으로 작업한 후 구역질, 구토, 설사, 두드러기, 무력감에 시달리다가 1년 6개월만에 1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어린 소녀가 모형 포도에서 녹색 가루를 빨아 먹은 뒤 죽은 사건도 벌어졌다. 이런 사례가 점차 늘어나면서 의사와 과학자는 모든 녹색 소비재를 조사하기 시작했고 결국 셸레그린이 그 원흉으로 밝혀졌다.

 

 

나중에 조사된 바에 의하면 겨우 가로 세로 6cm의 정사각형 녹색 벽지에도 성인 2명분의 치사량인 비소가 함유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 런던 가이 병원의 의사였던 오웬 리스는 영국의 유력 일간지 ‘더 타임즈’에 녹색 원단의 드레스를 입고 연회장에 참석하는 것은 비소를 연회장에 흩뿌리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영국 제조업자들이 비소의 위험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유행했던 셸리 그린 색상의 드레스

 

 

이유는 셸레 그린이 최고 유행 상품이 되면서 제조업자가 벌어들이는 돈 때문이었다. 희생자가 속출하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결국, 벽지회사는 벨벳 벽지의 독성으로 사람들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비소의 위험성이 알려지자 여러 상품에서 비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치명적인 성분은 벽지 외에도 녹색유리잔, 녹색 페인트, 심지어 녹색 드레스에서도 발견되었다. 빅토리아 시대는 과학 분야에서 수많은 발견을 통해 점성학, 물리학, 의학의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위대한 동식물학자 찰스 다윈이 과학적으로 진화 이론의 초석을 만든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대 사람들은 자연을 탐구하면서 더 넓은 세계를 이해하고 이론을 정립하는 데 진심을 다했다. 그러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하고 좀 더 자연을 닮은 색을 추구한 인간의 욕심으로 아름다운 킬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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