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되는 경제 이야기

AI 혁명으로 중요해진 네트워크 장비 산업(시스코와 엔비디아가 손을 잡다.)

꿈달(caucasus) 2024.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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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터’로 인터넷 인프라를 만든 시스코

 

여러분은 ‘시스코’라는 기업을 들어보셨나요? IT에 관심이 있으시거나 또는 주식투자에 대해 공부를 조금이라도 하신분들이라면, 2000년대 닷컴버블 당시 주가가 폭등했다가 급락했던 ‘시스코’라는 기업을 아실 것입니다.

 

 

시스코는 한 번쯤은 들어봤을 ‘라우터’라는 걸 최초로 상업화한 기업입니다. 단순화해서 인터넷이라는 것은 전세계에 깔린 컴퓨터들을 연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컴퓨터들은 하나의 중앙화된 ‘무엇(우리가 인터넷이라고 막연하게 부르는 것)’에 연결된 것이 아니라 전세계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전세계 컴퓨터에는 IP주소라는 것이 배정되어 있고 라우터는 내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데이터를 전송시키는 걸 도와주는 장비입니다.

 

 

라우터가 등장하기 전 컴퓨터들은 이더넷이라는 표준을 통해 폐쇄적인 자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있었습니다. 이걸 LAN이라고 부릅니다. LAN과 LAN이 계속 연결돼 전세계로 퍼져 나가 있는 것을 우리는 인터넷이라고 부릅니다. 라우터를 통해 전세계 인터넷이 연결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시스코는 인터넷 인프라를 만든 기업입니다. - 자료 참고: 매일경제 미라클레터

 

 

시스코의 로고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형상화했습니다.

 

 

닷컴 버블의 중심에 있었던 시스코

 

시스코는 1984년 스탠포드 대학 출신인 부부가 공동창업을 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인 세콰이아 캐피탈의 투자를 받았고, 1990년 상장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두 창업자가 제대로 회사를 이끌지 못하자 VC들에 의해 쫓겨났고,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이끌었습니다. 1995년부터 10년간 회사를 이끌었던 존 체임버스 CEO에 이어 지금은 척 로빈스 CEO가 10년 가까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존 체임버스 CEO가 재임하는 동안 시스코는 인터넷 시대와 닷컴버블을 경험했습니다. 상장당시 2억2400만달러였던 시가총액은 한때 2000배 오른 5000억 달러에 도달했고, 나스닥 1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가 올랐기 때문에 버블이 꺼졌을 때는 시스코에도 타격이 컸습니다. 주가는 5분의 1 토막이 나버렸고, 2001년 회사는 직원의 18%를 정리해고 하기도 했습니다.

 

 

시스코의 그동안 주가 차트, 닷컴 버블 당시 주가가 폭등했다가 급락했습니다. 아직도 최고가를 갱신하지 못했네요.

 

 

그 이후부터는 후발업체들이 새로운 기술을 내걸고 도전해왔습니다. 2000년 초반에는 주니퍼네트웍스의 도전을 받았고 2010년대부터는 아리스타네트웍스의 도전을 받았습니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화웨이가 중국시장과 통신장비시장에서 막강한 경쟁자로 부상했고, 유럽에서는 알카텔-루센트(현 노키아)의 도전을 받아야했습니다. 시장을 연 선구자라고 해도 계속 높은 점유율을 유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시스코 입장에서 고통스러운 점은 라우터를 비롯해 네트워킹 장비 시장이 이미 성숙단계에 도달해서, 치열한 점유율 경쟁이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시스코는 인수합병을 통해서 계속 새로운 시장에 도전했습니다.

 

 

링크시스(가정용 공유기 브랜드)를 인수해서 B2C에 진출하기도 했고(결국엔 폭스콘에 매각), 웹엑스를 인수해 화상회의 시장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스플렁크를 인수하는 등 네트워크보안과 클라우드쪽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성장이 정체된 시장 대신 사업 다각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치열한 네트워킹 장비 시장에서 시스코의 점유율도 어느정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엄청난 주가 버블이 꺼져도 회사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막강한 경쟁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시장이 ‘성숙/Saturation’하는 단계가 옵니다. 시장이 성숙해도 회사가 계속 혁신과 함께 주주가치를 높이면 주가도 올라갑니다.

 

 

엔비디아와 시스코는 사실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습니다. 시스코는 하드웨어 중심 기업이었고, 엔비디아는 CUDA같은 독점적인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갖고 있습니다. 네트워킹 소프트웨어 시장은 오픈소스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수많은 도전자가 뛰어든다고 해도 엔비디아의 높은 점유율이 쉽게 내려갈 것 같지는 않습니다.

 

 

 

AI데이터센터에서 네트워크가 중요해진 이유

 

이렇게 지루하기 짝이 없는 네트워킹 시장에도 AI의 부상과 함께 중대한 변화와 사업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AI데이터센터는 기존의 데이터센터와 완전히 다릅니다. AI 학습은 AI 데이터센터를 가득 채운 슈퍼컴퓨터들을 한꺼번에 다뤄야 합니다. 마치 오케스트라를 다루듯 세심하게 조작/ochestrate 해야 합니다. 컴퓨터와 컴퓨터간의 데이터 이동이 그래서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앞에서 폐쇄적인 네트워크에서 컴퓨터들을 연결하는 것을 LAN이라고 했는데, 이런 LAN과 이더넷도 당연히 데이터센터의 컴퓨터를 연결하는데 쓰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AI데이터센터에는 ‘인피니밴드’라고 하는 고성능의 네트워크 기술이 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이더넷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나온 기술이어서 데이터센터나 AI학습에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인피니밴드 기술은 누가 가지고 있을까? 바로 엔비디아가 2019년 이 기술을 만든 멜라녹스라는 회사를 인수해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AI데이터센터 네트워크의 90%에 인피니밴드가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엔비디아가 AI반도체를 팔면서 인피니밴드도 함께 팔고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스코, 아리스타네트웍스, 브로드컴 같은 네트워킹 업체들이 ‘AI데이터센터’에도 ‘이더넷’이 ‘인피니밴드’보다 낫다고 주장하면서, 이더넷을 AI데이터센터에 집어넣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들는 울트라 이더넷 컨소시엄이라는 것까지 만들어서 힘을 합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AI학습을 하는데 있어서 네트워킹이 전체 소요 시간 중 30%~50%를 소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I학습에서 시간은 곧 돈으로 연결되는데요. 네트워크의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장비(반도체)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얘기가 AI업계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체 네트워크 카드을 만든다는 뉴스가 나온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두번째는 사실상 엔비디아 독점이 되어버린 AI데이터센터에서 네트워크 장비라도 엔비디아의 독점을 풀어보겠다는 것이 네트워크회사와 엔비디아의 고객인 하이퍼스케일러(클라우드 회사들)의 생각입니다. CUDA라는 강력한 락인 효과가 있는 GPU와 달리 네트워크 쪽은 그래도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엔비디아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엔비디아는 이미 이더넷을 원하는 고객을 위한 ‘스펙트럼X’라는 이더넷 네트워킹을 지원하고 있고, 시스코와 손을 잡고 이더넷을 원하는 고객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네트워크 장비 분야의 전통적인 강자인 시스코와 엔비디아가 손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데이터센터 차원의 ‘무어의 법칙’

 

데이터센터 내의 네트워크는 왜 중요할까? 최근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와이어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칩 단위에서 무어의 법칙은 끝났고, 우리가 컴퓨팅의 스케일업을 계속 시키려면 데이터센터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의 성능(=컴퓨팅 능력)이 24개월마다 2배로 좋아진다는 것인데요. 이 무어의 법칙이 매년 성립하면서 테크 세계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도체를 더 이상 작게 만드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무어의 법칙’도 끝났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젠슨 황 CEO는 이런 컴퓨터 성능이 좋아지는 법칙을 데이터센터 차원에서 달성해야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과거 ‘황의 법칙’이라는 이름으로 AI 반도체의 성능이 계속 좋아질 것이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그 법칙을 AI 반도체가 아닌 데이터센터 차원으로 확장시킨 것 같습니다. 결국 AI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델 크기만 키우고, AI반도체만 발전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메모리부터 네트워킹, 전력까지 모든 것이 발전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결국 AI모델이나 반도체차원의 경쟁만큼 중요해진 것이 데이터센터 차원의 경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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