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투자하는 사람들에게는 오랫동안 마이너스를 기록 중인 종목에 쓰는 용어가 있다. 바로 “물렸다” 라는 말이다. 주식투자자들에게는 질색하는 소리같지만, 현실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남의 일이 아니다.
/ 참고도서: 한국형 가치투자(최준철, 김민국)
물린 상황을 좀더 구체적으로 풀어 정의해보면, ‘애초에 갖고 있던 투자 아이디어가 틀려 주가가 매수 단가 이하로 빠져버렸는데 그걸 알면서도 막연한 기대감으로 들고 버티는 경우’가 해당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투자 아이디어가 틀렸다는 부분과 막연한 기대감이란 표현이다. 물린 상황은 단지 손실인 상태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리게 되면 보통 아래와 같은 심리적 변화를 겪는다.
‘내가 잘못 샀나?’ 하는 불안감 → ‘이제라도 팔까?’ 하는 주저함 → ‘내가 이 주식을 왜 샀지?’ 하는 자괴감 → ‘결국 오르겠지’ 하는 기대감 → ‘망하기야 하겠어?’ 하는 체념 → ‘원금 이하로는 팔 수 없어’ 하는 고집 → ‘이럴 바엔 자식한테 물려주자’ 하는 극단적 처방 → 이러다 결국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서 바닥에서 처분하고 만다.
하지만 처분하고 나면 역시나 주식은 그때부터 오른다. 감정의 기복이란 한 사이클을 경험한 주식투자자일수록 물린 주식에 경기를 일으키는 이유가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물린 주식 앞에서 먼저 인정해야 하는 현실은 시장은 내가 지불한 가격에 대해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매수 단가는 깨끗한 의사결정을 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가 이 주식에 투자한 돈이 다시 현금으로 주어지더라도 같은 주식을 그만큼 다시 사겠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것을 권유한다.
“예스”라면 물린 상태가 아니고 “노”라면 물린 상태다. 이 질문을 소홀히 하면 ‘비자발적 장기투자’가 되고 만다.
이때 앞서 다뤘던 능력의 범위 문제가 대두된다. 보통 주가가 빠지면 그만한 악재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잘 모르는 사업이라면 주가와 악재 간의 인과관계가 맞는지 틀리는지 판단할 수가 없다. 투자 대가들이 잘 아는 기업에 투자하라 조언하는 건 그렇지 않은 경우 주가가 하락할 매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어서다. 그래서 물린 주식은 잘 모르는 분야인데 당대의 유행에 동참했던 경우에 주로 탄생한다. 하지만 아니라는 결론이 났더라도 여전히 파는 결정은 어렵기 마련이다. 과감한 결정을 위해선 대안이 필요하다. 갈아타기 편에서 언급했듯이 더 나은 종목을 발견하면 물린 주식에 이별을 고하기가 비교적 쉬워진다. 이때 “복수를 꼭 이 종목으로만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종목으로 복수하면 그만이다”는 생각도 도움이 된다.(복수라는 용어 자체도 좀 그렇고 “다른 종목으로 원금을 회복하면 된다”로 표현을 바꿔 이해해주기 바란다).
2012년 글로벌 넘버원 골프용품업체인 아쿠쉬네트(타이틀리스트 제조사)를 인수했다는 공시를 본 후 분석을 거쳐 휠라코리아 주식을 매수했다. 기대를 잔뜩 가졌지만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휠라 브랜드가 쇠락하면서 기업 탐방을 갈 때마다 담당자와 한숨만 쉬는 일 이 2017년까지 이어졌다. 무려 5년을 물려 있었던 셈이다. 길을 걸을 때 사람들 운동화만 보고 다니고 무신사에서 매일 판매 순위를 확인한 것도 이때다.
하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아쿠쉬네트를 성공적으로 상장시키고 의구심 가운데 진행했던 브랜드 리빌딩에 성공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되는 집안은 가지나무에 수박 열린다고 중국 법인 매출이 빠른 출점에 따라 증가하는 동시에 디스럽터라는 어글리슈즈를 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면 서 대반전이 일어났다. 6년간 쉬었던 주가는 2018년부터 1년 6개월 동안 저점에서 5배 이상 올랐다. 그해 미중 분쟁 격화로 극심한 약세장이 펼쳐졌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역주행도 이런 역주행이 없었다. 수익률에 큰 보탬이 된 것은 물론이다.
우리는 휠라코리아의 투자 경험에서 두 가지를 배웠다. 첫 번째는 회사는 뭔가를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점이다.(그래서 아쿠쉬네트도 인수한 것 아니겠나). 휠라코리아 또한 지루하고 힘든 우리의 기다림 동안에 반전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뭔가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언제 실제 성과로 이어지고 주가 상승으로까지 연결될지는 쉽게 예측 하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개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회사가 제시하는 계획과 사업을 둘러싼 제반 상황의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그래도 물릴 거면 물려도 괜찮은 종목에 물려야 한다는 점이다. 휠라코리아가 휠라와 타이틀리스트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브랜드 라이센싱으로부터 창출되는 현금흐름이 없었다면 브랜드 리빌딩 시도 전에 이미 새우가 고래를 삼킨 후유종으로 인해 망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오래 했어도 주식은 여전히 이래저래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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