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역사상 유명하고 악명 높았던 해적들 / 카리브해를 휘젓고 다녔던 희대의 해적들...

꿈달(caucasus) 2021.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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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유명하고 악명 높았던 해적들

/ 카리브해를 휘젓고 다녔던 희대의 해적들...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을 보면 조니 뎁이 연기한 잭 스패로우 라는 해적이 등장합니다.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캐릭터지요. 해적으로 등장하지만 전혀 악당스럽지 않고 정겹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실제 카리브해를 누비고 다녔던 실제 해적들은 어떠하였을까요? 그들은 당시 해상을 누비벼 상선을 약탈하고 많은 사람들을 해쳤던 악당들입니다. 해적선에 달린 백골기를 발견하면 선원들은 모두 공포에 떨었지요.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 등장하는 해적 잭 스패로우

당시 해적 중에는 가끔 약탈은 하되 사람은 해치치 않는다는 신사적인 해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두 흉악한 악당이었지요. 어떤 해적은 처음에는 해적질을 하다가 후에 정부와 계약을 맺고 소위 해양경찰 노릇을 하며 다른 해적들을 소탕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중세시대 카리브해를 휘젓고 다녔던 유명한 해적들의 이야기를 한번 살펴볼까요? 이 글을 보시고 혹시 고전게임 <대항해 시대>가 떠오르실지도... 🏴‍☠️

 

 

* 카리브해란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북부, 대앤틸리스 제도와 소앤틸리스 제도로 둘러싸인 바다를 말합니다.


 


바르톨로뮤 로버츠 (1682-1722)

1. 바르톨로뮤 로버츠 (1682–1722)

웨일즈에서 태어난 존 로버츠는 무자비한 약탈자로서 브라질, 카리브해 연안, 그리고 북쪽으로는 뉴펀들랜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나중에 그는 카보 베르데, 가봉, 나이지리아에서 상선을 공격하여 서아프리카로 가는 항로를 완전히 장악했다. 위의 판화에는 나이지리아의 칼라바르 강에서 술을 마시는 승리한 로버츠와 그의 무리들이 나와 있다. 로버츠는 일생 동안 400척 이상의 선박을 포획하여 당대 가장 성공적인 해적이라 불렸다.

 

새뮤얼 벨러미 (1689-1717)

2. 새뮤얼 벨러미 (1689–1717)

블랙 샘이라 불렸던 새뮤얼 벨러미는 영국의 해적 선장이었지만 붙잡은 사람들에게 보여준 관대함으로 존경을 받았다. 벨러미가 거둔 가장 큰 노획물은 바로 노예선 와다 갤리였다. 재물을 가득 실은 이 배는 히스파니올라와 쿠바 사이를 항해하던 중 공격을 받았다. 벨러미는 와다 갤리를 타고 북쪽의 케이프 코드로 향했고 곧장 거센 폭풍우를 만났다. 배는 벨러미와 그의 선원들 대부분을 실은 채로 침몰했다. 그리고 1984년, 마침내 이 난파선은 상아, 인디고 염료, 영국의 파운드화 금 등 귀중한 화물들이 온전한 채로 발견되었다.

 


검은 수염 (1680-1718)

3. 검은 수염 (1680–1718)

영국 사람 에드워드 티치이자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해적으로 불리는 검은 수염은 자신의 무시무시한 외모에 덕분에 사로잡은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인질들을 해치거나 살해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뉴프로비던스의 바하마 섬에 기반을 둔 검은 수염은 서인도 제도와 영국의 북미 식민지 동부 해안에서 활동했다. 상선들은 해적에게 풍부한 노획물을 제공했다. 그러나 검은 수염의 전성기로 점점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오크라코크 섬 앞바다에서 해전을 벌이는 동안 포로로 잡혀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왠지 캐러비안의 해적 잭 스패로우랑 비슷한 이미지...)

 

스테드 보넬 (1688-1718)

4. 스테드 보넬 (1688–1718)

해적이 되기 전에도 이미 부유했던 보넬은 1717년에 해적이 되는 것에 눈을 돌렸다. 신사 해적이라 불렸던 그는 지금의 미국 동부해안을 괴롭혔다. 보넬이 보낸 범죄자로서의 삶은 기간이 짧았지만 효과적이었다. 그 역시 뉴프로비던스에 기반을 두고 있었으며 여러 습격에서 검은 수염과 협력했다. 그러나 그의 운은 케이프 피어강 전투에서 다했고, 영국군은 그와 그의 선원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그는 찰스턴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케이프 피어강 전투를 기념하는 찰스턴 기념비에는 화이트 포인트에서 삶을 마감한 스테드 보넬에 대한 언급도 있다. 방문객들은 이 곳에서 해적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하웰 데이비스 (1690-1719)

5. 하웰 데이비스 (1690–1719)

단지 11개월 간 해적으로 활약한 웨일즈 출신의 하웰 데이비스는 영국 및 프랑스 선박 15척을 포획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중 몇 척은 서인도 제도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나중에 서아프리카 해안에서 더 많은 것을 노획하려 했다. 포르투갈의 카 보베르데 섬과 프린시페 섬 주변의 선박을 위협했으며 그곳에서 매복하던 군대에 의해 사망했다.

 

에드워드 잉글랜드 (1685-1721)

6. 에드워드 잉글랜드 (1685–1721)

실제로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시거였던 에드워드 잉글랜드는 인도양으로 항해하며 여러 배를 약탈하고 아프리카 해안에 졸리 로저 깃발(해적기)을 드높였다. 악명이 높아짐에 따라 에드워드 잉글랜드의 약탈은 더욱 증가했다. 그는 코모로 제도 근처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결국 모리셔스(당시 일 드 프랑스로 알려짐)에 고립되었다.

 

헨리 에버리 (1659-1699?)

7. 헨리 에버리 (1659–1699?)

인기가 높아 해적들의 왕이라고 알려진 헨리 에버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적이 되게끔 영감을 주기까지 했다. 에버리는 전투에서 체포되거나 죽지 않고 약탈의 전리품을 즐겼다. 그의 해적 커리어 중 가장 성공적인 습격은 보물을 가득 실은 무장 도우 선을 나포한 것이었고, 그 공격 덕분에 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해적이 되었다.

 

이스라엘 헨즈 (연대 미상)

8. 이스라엘 헨즈 (연대 미상)

악명 높은 검은 수염의 오른팔 이스라엘 헨즈는 멕시코와 온두라스에서 해적으로 활약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훗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1883)에서 캐릭터로 등장하여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윌리엄 키드 (1654-1701)

9. 윌리엄 키드 (1654–1701)

키드 선장으로 더 잘 알려진 스코틀랜드 출신의 윌리엄 키드는 카리브 해를 항해하는 프랑스-영국 해적의 선원으로 해적 경력을 시작했다. 결국 그는 공해상에서 살인과 해적 행위로 교수형을 당했다. 키드 선장에 대한 영원한 전설은 그가 세계 여러 지역에 상당한 양의 보물을 묻었다는 설화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키드가 억류했지만 이후 침몰한 인도의 상선 퀘다 상선은 2007년 도미니카 공화국의 카탈리나 섬 해안에서 난파선으로 발견되었다.

 

에드워드 로(1690-1724?)

10. 에드워드 로 (1690–1724?)

소위 해적의 황금기에 활동했던 해적들 중 가장 추악하고 고약했던 에드워드 "네드" 로우는 런던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매사추세츠 주의 보스턴으로 이주했고 해적이 되었다. 그는 추악한 해적 선원들과 함께 노획한 배를 활용하여 남쪽에 위치한 그랜드 카이만으로 향했다. 거짓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깃발을 걸어 올리는 방법을 활용하여 도움을 주려는 순진한 배들에게 접근하곤 했다. 에드워드의 가학적 본성은 마침내 마음대로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인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장을 맞이했다. 북쪽으로는 노바스코샤, 남쪽으로는 수리남까지 세력을 떨쳤고, 대서양을 건너 카나리아 제도와 카보 베르드까지 그에게서 안전한 선박은 없었다. 에드워드 로의 최후는 사실 알 수 없다. 일부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는 카나리아 제도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다고 한다. 또다른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뉴기니에서 목격되었다고 한다. 런던에 위치한 국립 해양 박물관에서는 그가 결코 사로 잡히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브라질에서의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아마로 로드리게스 펠리페 (1678-1747)

11. 아마로 로드리게스 펠리페 (1678–1747)

아마로 파르고라고 더 잘 알려진 스페인의 해적 아마로 로드리게스 펠리페는 스페인 왕실과 적대적인 측에 속한 선박들을 약탈했고, 노획물들은 마드리드로 다시 보내졌다. 아마고 파르고는 다른 해적들과 싸울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고, 한때 검은 수염과의 접전에서도 살아남았다. 또한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사망한 카나리아 제도에서 터키 해적과도 싸웠다. 그의 무덤은 테네리페의 산토 도밍고 성당에 있다.

 

존 라컴 (1682-1720)

12. 존 라컴 (1682–1720)

바하마와 쿠바 근해에서 활동한 영국 해적 선장이자 '칼리코 잭'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랙햄은 주로 두 사람의 여성 선원, 메리 리드와 자신의 연인 앤 보니를 승선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라컴은 해안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선박을 약탈하는 성공적인 전술로 유명했다. 그러나 자메이카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던 전술을 활용하다 체포되었고 나중에 포트 로열에서 처형되었다.

 

앤 보니 (1697-1782?)

13. 앤 보니 (1697?–1782?)

카리스마 넘치는 것만큼이나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앤 보니는 빨간 머리카락을 가진 아일랜드 출신의 해적이다. 그녀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성 해적 중 한 사람이다. 남장은 한 앤 보니는 존 라컴의 해적단에 합류하여 동료 해적들과 함께 소규모 접전을 여러 차례 벌였다. 전투 과정의 모든 면에서 큰 활약을 보였던 그녀는 동료 해적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후 해적 행위로 앤 보니는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그녀는 임신한 상태였기에 교수형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찰스 존슨 선장의 1742년 해적 전기 컬렉션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그녀의 최후에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메리 리드 (1685-1721)

14. 메리 리드 (1685–1721)

영국 출신의 메리 리드는 18세기를 대표하는 유명한 여성 해적 중 한 사람이다. 물론 나머지 한 사람은 앤 보니이다. 서인도 제도에 도착한 리드는 배에서 일하기 위해 남장을 했고 곧 해적 무리에 합류했다. 1720년, 그녀는 라컴 선장과 앤 보니 무리에 합류했다. 메리 리드는 체포된 후 앤 보니처럼 임신중이라는 이유로 사형 집행인을 속여 사형을 면했다. 결국 그녀는 감옥에서 열병으로 사망했고, 자메이카의 성 캐서린 교구 성당 근처에 묻힌 것으로 전해진다.

 

우즈 로저스 (1679-1732)

15. 우즈 로저스 (1679–1732)

영국 출신의 선장이자 사나포선주인 우즈 로저스는 스페인을 향해 항해를 시작했고 지구를 일주하며 도중에 여러 척의 스페인 선박을 나포한 것으로 유명하다. 항해중이던 로저스의 배는 무인도에 4년 동안 고립되어 있던 알렉산더 셀커크를 구출했다. 버림 받아 고통 받았던 셀커크의 스토리는 작가 다니엘 데포에게 로빈슨 크루소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 수 있도록 영감을 주었다. 훗날 해적 행위를 포기한 로저스는 결국 최초의 바하마 총독으로 임명되었고, 카리브 해 인근의 해적 진압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올리비에 르바세르(1688-1730)가 남긴 암호문

16. 올리비에 르바세르 (1688?–1730)

위풍당당했던 프랑스의 해적 르바세르는 암호화된 짧은 텍스트로 구성된 퍼즐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퍼즐을 해독하면 숨겨진 보물창고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르바세르는 자신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갔다. 위 사진은 르바세르의 암호이다. 한번 풀어보고 싶은가? 복잡한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행운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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