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임상시험 시작, 선천성 유전자 질병 치료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1998년에 개봉된 영화 <가타카>에서는 인간의 유전자를 마음대로 선택해서 조작할 수 있어 우수한 신체능력과 지적 능력을 지닌 인간을 창조해낸다. 영화에서는 유전자 조작 기술로 인해 열등한 인간들은 사회의 하층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살게 된다. 유전자 조작의 혜택을 받은 부자들은 자녀들을 백화점에서 쇼핑하듯 부모가 원하는 인간으로 미리 계획하여 출산하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유전자 조작이라는 기술이 악용되면 어떻게 암울한 세상이 오게 되는지 그리고 있다. 물론 영화속에서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 잘못 활용되어 디스토피아적인 사회를 경고하고 있지만, 반대로 유전자 조작을 올바르고 현명하게 활용하면 선천성 질병을 치료하는 획기적인 길이 열릴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의미있는 임상시험이 시작되었다.
최근 DNA에서 원하는 부위만 잘라내거나 바꿀 수 있는 '크리스퍼(CRISPR-Cas9)' 유전자 가위를 세계 최초로 인체에 직접 투여해 유전자를 교정하는 임상시험이 시작됐다.
이를 통해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체내 유전체 교정의 안전성과 효능이 입증될 경우, 극히 일부에만 적용 가능했던 유전자 교정 치료의 대상을 다양한 질병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안과 의사인 마크 페네시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3월 초 선천성 희귀망막질환인 레베르선천성흑내장(LCA10) 환자들을 대상으로 눈에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직접 주입하는 임상시험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특정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한 선천성 실명 환자들의 유전자를 교정해 이들이 시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레베르선천성흑내장은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빛을 감지하는 망막 광수용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시력을 잃는 질환이다. CEP290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볼 수 없거나 시력이 있더라도 10세 이전에 실명하게 된다. 아직까지 개발된 치료법은 없다. 그런데, 이번 마크 페네시 박사의 연구팀이 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환자들을 대상으로 눈에 직접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직접 주입하여 질병을 유발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하는 임상시험에 착수한 것이다.
(CEP290 제거를 목적으로 제작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환자의 유전체에서 LCA10의 주범인 CEP290 유전자 돌연변이를 제거하게 된다.)
그동안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임상시험은 환자 몸에서 세포를 추출한 뒤, 체외의 배양접시에서 유전체를 교정한 다음 이를 환자에게 다시 주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당연히 유전자 가위를 체내에 주입했을 때 발생할지도 모르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동안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는 T세포 같은 면역세포처럼 혈액을 통해 손쉽게 추출·재주입이 가능한 인체세포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할 수밖에 없었다.
김상규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특정 장기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질병은 사실상 체외 유전체 교정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페네시 교수는 "CEP290 돌연변이는 망막 광수용체를 불능화하지만 물리적으로 망가뜨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광수용체는 여전히 LCA10 환자의 눈 속에 살아 있다"며 "목표는 이들의 광수용체를 다시 활성화해 앞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체 광수용체의 2~4%만 교정하더라도 시각 기능이 50%가량 회복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발병 원인인 유전자 돌연변이 자체를 제거하는 방식인 만큼 효과가 반영구적이라는 장점도 있다.
실제로 이보다 앞서 유전자 가위를 이용한 치료는 아니지만, 약물요법으로 LCA10 환자들의 시력이 일부 회복되었다는 실험보고는 있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페렐만의대와 네덜란드의 생명공학회사 ProQR 등 공동 연구진이 '안티센스 치료법'으로 불리는 약물요법을 이용해 돌연변이 CEP290 유전자에 의해 생성된 mRNA를 비활성화시켜 이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한 결과, LCA10 환자의 시력 일부가 회복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임상시험에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안전성과 효능이 검증되면 향후 유전자 가위를 인체에 직접 투입해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다양한 연구에도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이미 동물실험에서는 근육이 퇴화하는 뒤센근이영양증(DMD) 등 여러 유전질환에 대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체내 유전체 교정 효과가 확인됐다.
우리나라에서도 2017년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과 김정훈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 연구진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노인성 황반변성을 앓는 쥐의 눈에 주입해 유전자를 교정한 결과 치료 효과가 나타났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바 있다. 제이슨 코맨더 하버드 의대 매사추세츠 안과·이비인후과 병원 교수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의학계는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학계 일각에서는 체내 유전체 교정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표도르 우르노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기존 체외 유전체 교정이 일반 비행기를 타는 것이라고 한다면 유전자 가위를 직접 체내에 투입하는 것은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비행하는 것과 같다"며 "현시점에서 체내 유전체 교정은 기대 효과보다 기술적인 난관과 잠재적인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더 크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나는 이번 페네시 교수팀의 연구가 좋은 성과를 거두길 기대해본다.
그동안 체외에서 유전자를 교정하여 다시 주입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페네시 교수팀의 임상시험은 유전자 가위를 질병을 앓고 있는 부위에 직접 주입해 표적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하기 때문에 좋은 성과가 나온다면 그동안 선천성 유전성 질병으로 평생동안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 환자들에게 획기적인 치료의 길이 열릴 것이다.
물론 유전자 가위와 같은 유전자 조작 기술이 영화 가타카와 같이 악용되어서는 안되겠지만 반대로 유전자 가위 기술을 현명하게 활용하게 된다면 인류는 선천성 유전성 질병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하지만 이와 같은 시도가 꾸준히 이루어져 선천성 유전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하루빨리 치료를 받게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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