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달의 자산관리 공부(재테크)

워런 버핏의 천재성과 가문의 내력, 펀드 매니저 생활

꿈달(caucasus) 2023.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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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워런 버핏의 천재성과 그의 가문, 그리고 펀드 매니저 생활을 하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난 시간에 다뤘던 워런 버핏의 유년기와 그의 투자 업적은 아래 포스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워런 버핏은 현존하는 투자자 중에 가장 성공한 투자자로 꼽힙니다. 그 이유는 버핏이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궜다기보다는 거의 대부분이 투자로 지금의 부를 일궜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버핏이 원래 금수저였으니까 다른 사람보다 출발선이 앞서 있었기 때문 아니야? 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사실 집안이 워낙 뼈대 굵은 가문이라서 물론,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투자로 자수성가하여 지금의 부를 일궜습니다.

 

👉 관련 포스팅: 2023.09.22 - [꿈달의 자산관리 공부(재테크)] - 워런 버핏의 위대한 투자 업적과 천재성

 

워런 버핏의 위대한 투자 업적과 천재성

여러분도 너무 잘 알고 있는 현존하는 투자의 대가~ 바로 워런 버핏이지요. 워런 버핏은 살아있는 투자 대가들 중에서 오로지 투자만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천재적인 투자자입니다. 물론,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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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의 천재성

 

 

버핏은 일단 비범한 천재성을 어린시절부터 보였습니다. 그는 숫자 계산과 암산에 비범한 재능이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관찰하는 것도 좋아했고, 한때는 경마 예측표를 팔기도 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어린 시절부터 통계에 기반하여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수학할 때에는 벤저민 그레이엄으로부터 전 과목 A+를 받은 유일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럼 버핏의 집안, 가문 내력을 살펴볼까요?

 

 

버핏의 가문은 할아버지 대에는 지역에서 커다란 식료품점을 하면서 꽤 유복했던 환경이었습니다. 아버지 하워드 버핏은 주식중개회사를 설립하여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사업이 꽤 잘되었고, 이후에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무려 4선까지 역임합니다. 어머니 레일라의 가족은 인쇄소를 운영하였고, 그녀의 아버지는 네브라스카 웨스트포인트 주간지의 사장이자 편집장이었습니다. 아내인 수지 톰슨의 아버지는 네브라스카 오마하 대학의 학장이었구요. 양가 부모님의 인맥은 버핏이 파트너십의 고객을 유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버핏 가족의 모습. 왼쪽의 청년이 10대 시절의 워런 버핏

 

 

1956년 파트너십 설립 이전인 1953년에는 아버지를 위해 ‘버핏 앤드 버핏’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아버지의 돈을 운용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통, 증권, 미디어 등 가문 구성원들이 가진 다양한 분야의 사업 경험이 버핏의 지식 확장에 기여하였습니다.

 

 

투자의 시작

 

 

버핏은 6세 때 처음으로 투자 서적을 읽었고, 7세 때 크리스마스 선물로 채권 판매 관련 서적을 요청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도 소개했듯이 10세 때에는 복리의 위대함을 깨닫고 11세 때 처음으로 주식을 샀습니다. 그는 심지어 그때도 늦었다고 후회한다고 합니다.

 

 

버핏은 10세 때부터 아버지가 일하는 증권회사를 방문하여 시세창을 들여다 보기도 하고 투자 서적을 읽곤 하였습니다. 투자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경험이지요.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을 알기 전에 차트 분석에도 심취하는 등 당시에 나와 있는 모든 투자 기법을 시도해보면서 본인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사업 소득과 경험

 

 

누구나 물려받지 않은 재산이 많지 않다면 처음에는 노동으로 돈을 벌어야 합니다. 버핏 역시 유복한 집안 환경이었지만 그는 어린시절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왔고, 주식을 시작한 이후에도 각종 사업을 벌이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주식을 샀습니다. 버핏은 사업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아주 중요시하는데, 그의 이러한 직접적인 사업 경험은 투자 대상 사업을 파악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버핏의 주력 포트폴리오가 유통, 소비재, 미디어, 금융 등이 포함된 것은 그가 직간접적으로 그러한 사업들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펀드매니저 생활

 

 

버핏은 한 때 펀드매니저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펀드매니저였던 벤저민 그레이엄의 강의를 수강하고, 그의 회사에서 3년간 펀드매니저로 일했습니다. 이 당시 기관투자자였던 그레이엄은 경영권 투자, 차익거래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버핏은 그레이엄의 이같은 투자기법을 고스란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버핏은 파트너십 시절에 엄청난 수익을 올렸었는데, 이러한 수익을 경영권 참여, 워크아웃 등으로 수익을 크게 낼 수 있었습니다. ‘샌본 맵’에 투자할 때는 회사와 싸웠고, ‘뎀스터 밀’에 투자할 때는 직접 경영에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버핏은 어린시절부터 천재성을 보이며 집안의 여러 가지 관련 사업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주식거래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당대 최고의 펀드매니저이자 기관투자자였던 그의 스승 벤저민 그레이엄으로부터 사사한 후 스스로 투자회사를 차려 큰 부를 일궜습니다. 이때가 버핏이 30대 중반이었습니다. 이미 30대 중반에 버핏은 평생 쓰지도 못할 막대한 부를 일궜기 때문에 이때 은퇴를 선언해도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버핏은 은퇴하지 않았고, 현재 그의 나이 93세에 이르기까지 투자자로 지내오고 있습니다. 그의 별명이 ‘오마하의 현인’인데 이러한 별명이 괜히 붙은게 아닙니다. 정말 현인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지혜를 많은 대중들에게 전해주기를 바랍니니다. 다음 시간에는 버핏이 막대한 부를 본격적으로 일구기 시작했던 주요 투자 전략에 대해서 소개해볼까 합니다. 그것은 바로 ‘레버리지’와 ‘기업 전체 인수’입니다.

 

<버핏의 주요 이력>

1930년: 네브라스카 주(州) 오마하 출생

  6세: 코카콜라 팩(6개)을 구입, 낱개로 팔아 20%의 수익 남김

11세: 아버지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주식시장에 관심 보임. ‘시티 서비스’의 주식을 주당 38달러에 사들인 후, 40달러에 매도

14세: 신문배달로 1000달러 벌어들임. 이때부터 세금 내기 시작

16세: ‘핀볼 게임기 대여업’, ‘렌터카’ 사업 시작

20세(1950년): 네브래스카대학 졸업 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지원했다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낙방.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진학

26세: 오마하에서 ‘버핏 투자조합’ 설립. 총 10만 5100달러 끌어모음

40세: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취임. 주주에게 매년 편지 보내기 시작

63세: 미국경제잡지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부자에 오름

76세(2006년): “주식 85% 기부”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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