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가이드는 프랑스의 타이어 제조 기업인 미쉐린이 매년 봄에 발간하는 식당 여행 가이드 북이다. 프랑스어로 기드 미슐랭(Guide Michelin)으로 발음한다. 그래서 미슐랭 가이드로 불린다. 그러나 한국 지사인 미쉐린 코리아가 한국어 공식 발음을 ‘미쉐린’으로 결정하면서 미슐랭 가이드의 공식 발음 역시 ‘미쉐린 가이드’가 됐다.
프랑스의 타이어 제조 기업인 미쉐린은 30대 청년인 앙드레 미슐랭과 에두아르 미슐랭 형제가 창업했다. 두 형제는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에 있는 고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펑크 난 자전거 타이어를 수리하는데 3시간이 꼬박 걸렸다고 한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었고 그래서 2년 뒤 창업한 것이 미쉐린 타이어다. 세계에서 첫 분리 가능한 공기 타이어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전역의 자동차 대수는 고작 3000대 남짓이었다.
당시에 자동차는 부유층의 장난감 수준이었고, 타이어 산업은 보잘 것 없었다. 그래서 미슐랭 형제는 막 태동한 산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포지션을 찾고자 했고, 그것은 바로 자동차 정보의 중심이었다. 두 형제는 1890년 처음으로 399페이지에 달하는 미슐랭 가이드를 발간한다. 자동차를 보유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할 정보들로 가득 찬 안내 책자였다.
첫 장부터 타이어 교체 방법이 33페이지나 차지했고, 주유소는 아직 등장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휘발유를 판매하는 약국 주소를 수록했다. 또 도로에는 아직 조명이 없었기 때문에 해가 지는 시간까지 나열한 표를 수록했다. 이뿐만이 아니고 자동차가 고장이라도 난다면 수리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수리점이 어디에 있고 언제 문을 닫고 여는지 적었다.
해가 갈수록 미슐랭 가이드는 자동차 산업에 큰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미슐랭 가이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도로에 번호를 붙이자”고 제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에는 도로에 고유 번호가 없었는데, 에두아르 미슐랭이 정부를 설득했다. 또 호텔을 상대로는 무료 주차를 제공하라고 압박했다.
처음에 책자는 무료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이 지불한 것만을 진정으로 존중한다” 는 사실을 깨닫고, 1922년에 7프랑을 받고 팔았다. 물가 상승분을 고려하면 오늘날 약 90만원에 달하는 값비싼 책이었다. 이때부터 책자에 호텔과 레스토랑 목록을 추가했다. 대신 책 발간을 위해 재정적으로 필요했던 광고를 없앴다. 발행 부수는 날로 커져, 10만부를 달성했다.
미슐랭 가이드는 미쉐린 타이어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훌륭한 마케팅 도구였다. 미슐랭 가이드 1924년 판본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자동차가 있으면 새벽 5시에 기차를 탈 필요가 없습니다.” “자동차가 있으면 가족생활에서 더 즐거운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부자들이 자동차를 구입하고 프랑스 전역을 운전하면 할수록, 미슐랭 가이드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미슐랭 형제는 사람들이 유달리 파인 다이닝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그래서 책자를 두 개로 분리한다. 빨간 책과 초록 책. 초록 책은 자동차 여행안내 책자인 그린 가이드이고, 빨간 책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맛 집 정보를 수록한 미슐랭 가이드다.
또한 두 형제는 비밀 손님을 뜻하는 속칭 미스터리 다이너(mystery diners) 팀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식당 정보만 수록했는데, 1926년부터는 팀원들이 손님으로 가장해 식당을 찾아가 별점을 주기 시작했다. 엄격하게 별0개부터 3개까지 준 것이, 파인 다이닝을 갈구하던 손님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이에 힘입어 2008년 판매량만 130만부가 넘었다. 그동안 4만개가 넘는 레스토랑을 평가했고, 누적 판매량은 3000만 부를 넘었다.
미슐랭에서 독특한 점은 평가가 여행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이다. 차를 몰고 방문해 들를만한 식당인지 말이다. 별의 개수에 따라 다음과 같은 의미가 부여된다.
3스타: 요리가 매우 훌륭해, 특별한 여행을 할 가치가 충분한 식당
2스타: 요리가 훌륭해, 멀리 찾아갈 만한 식당
1스타: 요리가 훌륭한 식당
이밖에 지금은 주목할 만한 레스토랑인 플레이트(Plate), 합리적 가격으로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식당인 빕 구르망(Bib Gourmand), 식재료의 윤리적 환경적 기준을 갖는 그린스타(Green Star) 등급이 별도로 있다. 물론 논란도 있다.
3스타 기준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충분한 식당”이라고는 하지만, 1스타만 되더라도 해당 레스토랑은 사실 평생 매출이 보장될 정도로 명성을 얻기 충분하다. 3스타가 가장 많은 국가가 프랑스인데, 그 숫자는 고작 30개에 불과하다. 한국은 1개로 3스타 레스토랑은 사실 레전드가 된다.
평가 역시 맛을 기준으로 삼는다고 한다. 재료 수준, 풍미에 대한 완벽성, 창의성, 합당한 가격, 메뉴의 일관성이다. 분위기와 서비스는 평가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2016년에는 싱가포르에서 음식 값이 고작 1.85달러에 불과한 치킨과 누들 노포가 별을 받기도 했다. 다만, 정작 이런 식당이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1952년 타임지는 미슐랭 가이드를 가리켜 ‘관광객의 성경’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당시에는 GPS나 내비게이션이 없었기 때문에, 자동차 여행객들의 미슐랭 의존도는 더 컸었다. 연합군이 2차 대전 당시 길을 찾고자 미슐랭 가이드를 갖고 노르망디에 상륙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인터넷 시대에 접어들어 미슐랭 가이드 역시 쇠락의 길을 걸었다. 오늘날 인쇄본을 찍고 있기는 하지만 콘텐츠는 주로 온라인을 통해 유통한다. 콘텐츠 역시 다이닝, 트래블, 피플 등 고급 잡지를 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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