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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워런 버핏의 투자원칙

꿈달(caucasus) 2021.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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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어떻게 부자가 되었을까?

- 워런 버핏의 투자원칙 -

 

주식투자 하시는 분들이시라면 워런 버핏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현존하는 주식투자의 대가 중에 워런 버핏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그는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으로보터 '가치투자' 원칙을 배우고 그 투자원칙을 잘 지켜서 세계적인 부자의 반열에 오른 사람입니다. 시중에는 워런 버핏의 이름이 들어간 책들이 많지요.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단 한권의 책도 쓴 적이 없습니다. 평소 책을 많이 읽기로 소문난 그이지만 책을 쓸 시간은 없었나 봅니다. 대신 워런 버핏의 말들과 그가 버크셔해서웨이의 주주들에게 쓴 편지들을 모아놓은 책은 있습니다. 바로 <워런 버핏 바이블><워런 버핏의 주주 서한>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두가지 책 중에서 <워런 버핏 바이블>이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합니다. 그의 투자철학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현재 그는 개인자산이 100조원에 달합니다. 이렇게 버핏은 막대한 부를 이룩한 부자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부자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도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보통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현재의 큰 부자가 되었는지 그 과정을 한번 살펴봅시다.

 

찰리멍거(좌), 워런버핏(우)의 리즈시절 사진을 찾아봤습니다.ㅋㅋ 두 분 모두 훈훈하셨네요. 

* 11세 때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함. ‘시티즈 서비스’라는 기업의 우선주를 사면서 시작했는데, 총 100주를 사서 200달러를 벌었음. 지금 물가로는 2,000달러가 조금 넘는 금액. 그는 어릴 때 주식투자 경험을 통해 장기투자의 중요성에 대해 배웠다고 함.

 

* 17세 되던 해 첫 사업을 시작함. 중고서점에서 핀볼 게임기를 구매해 이를 빌려주고 수익을 내는 사업이었음. 핀볼 게임기를 주로 이발소에 팔았는데 게임기 덕분에 이발소가 잘 된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주문을 받음.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는 월 수입이 학교 선생님보다 컷다고 함.

 

* 대학 학비를 스스로 벌면서 학교를 다님.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밟았는데 이 때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나게 됨. 사실 버핏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지원했다 낙방했는데, 이것이 운 좋게도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나는 행운이 되었음.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을 통해 관심은 덜 받지만 좋은 기업의 주식을 최대한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파는 가치투자를 배움.

 

* 대학 졸업후 1951년~1964년까지 투자은행(일종의 증권사)에서 근무하며 ‘담배꽁초 전략’을 구사함. 자산 규모가 작은 회사에 투자해서 시세차익을 많이 남기는 전략. 시장이 강세장일 때 유리함.

 

* 1962년 백만장자가 되었음.

 

 

* 1964년 직물 제조업을 영위하던 버크셔해서웨이를 인수함. 버크셔해서웨이는 사양산업이던 직물제조업을 영위하고 있었음. 버핏은 버크셔해서웨를 인수하고 기업을 다시 활성화시키고자 18년간을 고생함. 하지만 당시 버크셔해서웨이의 부회장이자 나중에 절친이 되는 ‘찰리멍거’로부터 1972년 씨즈캔디를 인수하자는 대형 프로젝트 제안을 받고 실행함. 이후 씨즈캔디는 미국 최고의 초콜릿 업체로 성장하여 인수 당시 2,500만 달러가 지금은 8,000배나 올랐음. 버핏은 씨즈캔디를 인수했던 경험을 통해 버크셔해서웨이를 투자전문회사로 키우는데 성공함.

 

* 이후 '가치투자 원칙'을 고수하며 좋은 기업의 주식을 싸게 사서 비쌀 때 되파는 방식으로 현재 100조원에 육박하는 자산가가 되었음. 물론, 그도 실패한 투자 경험이 있음. 한때 4억 3,300만 달러에 인수한 ‘덱스터’라는 회사가 인수 뒤 얼마 못가 망하는 바람에 2014년 당시 57억달러에 해당하는 엄청난 손실을 내기도 했음. 하지만 그의 인생 전체를 통틀어 보면 실패보다 성공한 사례가 더 많음.

 

버핏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그의 성공 비결을 크게 두가지로 요약합니다.

첫째, 수입원을 잘 분산시키는 전략입니다. 버핏은 아주 낮은 위험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를 위기에 대비하여 수입원을 잘 분산시켰습니다. 그는 보험회사부터 씨즈캔디와 같은 초콜릿 업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체에 투자했습니다. 그 결과 2008년 금융위기로 전 세계 모든 기업이 유동성의 위기를 겪을때도 그는 현금 156억달러를 공급할 수 있었습니다.

 

버핏이 이처럼 유동성의 위기를 이겨낸 것은 평소 그가 위험을 대비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안전마진과 경제적 해자를 설정했습니다. 이 작업을 그의 절친이자 버크셔해서웨이의 부회장이었던 찰리 멍거가 함께 했습니다. 그 둘은 ROE(자기자본이익률)를 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부채가 적은 기업, 그와 동시에 경쟁사들과 진입장벽(경제적 해자)을 확실하게 세우는 기업들을 인수하며 투자를 성공시켰습니다. 어찌보면 버핏은 기업 인수합병의 전문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주식투자해서 번 돈보다 이렇게 인수합병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더 크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단순함’입니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이 잘 아는 사업모델에만 투자했습니다. 자신이 잘 모르는 기술주에는 투자하지 않고 전통적인 제조 서비스 업체에 투자했지요. 예를 들면 코카콜라, 뱅크오브아메리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카드 등입니다. 그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에게 배운 가치투자 원칙을 철저히 고수한 것인데, PBR과 PER이 낮은 기업들 다시 말해서 기업의 내재 가치에 비하여 주가가 낮은 기업들에 투자해서 비쌀 때 되팔았습니다. 그는 주식투자를 하는 투자자들에게 자기가 잘 알고 있는 기업, 거기에 가치투자 원칙을 철저히 지켜 20여개의 기업 주식만 투자하라고 제안합니다. 또한 자주 주식을 사고팔지 말고 투자하는 기업과 결혼한다는 마음으로 평생 소유할 할 수 있는 기업들에 투자하라고 합니다. 버핏은 오래도록 주식을 장기 보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주식을 팔 경우를 딱 세가지 경우만 해당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목표한 가격이 왔을 때, 실수했구나~! 라고 깨달았을 때, 더 좋은 주식이 나타났을 때입니다.

 

여담으로 그는 자신의 기업을 물려줄 후계자들을 양성하고 있는데요. 버핏의 자식들이 아니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할 계획이며 후계자들 중에서 선택할 것입니다. 그 중 한명이 ‘아지트 자인’ 이라는 사람인데, 버핏은 그를 ‘형제나 자식과 다름없다’라고 평했습니다. 최근에는 버크셔해서웨이가 기술주에 투자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아지트 자인의 영향을 받은 결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버핏은 그동안 제조업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에 가치투자를 해왔는데 요즘의 이같은 변화는 확실히 버핏이 기술주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현재 개인자산이 10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부를 쌓았습니다. 세계에서 3번째 가는 부자이지요. 이렇게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음에도 아흔이 넘은 지금까지 소박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60년전에 산 허름한 집에서 생활하고 아침식사를 맥도날드 햄버거와 콜라로 해결하기도 합니다. 또한 공화당에서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법안을 그 누구보다 반대해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재산을 자식에세 물려주고자 한 적이 없습니다. 그대신 재산의 일부를 <빌 게이츠&멜린다 재단>에 기부하고 있지요. 예전에 그가 타는 승용차가 2001년형 링컨 타운카라는 오래된 자동차였고 이 차를 폐차하는 대신 사회단체에 기부했다고 하지요. 그가 타던 자동차였으니 경매에 내놨으면 비싼 값에 팔렸을테데 말입니다.  이렇게 막대한 부를 쌓았음에도 평소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며 사회적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행사는 그는 정말 진정한 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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