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시초, 기원, 역사 / 화폐의 작동 원리는 무엇인가?

물물교환을 하고 싶다

 

유발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서는 화폐의 기원 내지 역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아주 오래된 옛날에는 금속 재질의 화폐가 개발되기 전에는 고둥 껍데기나 조가비, 보리 등이 화폐의 기능을 수행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고둥 껍데기 중에서도 별보배고둥이라는 껍데기가 널리 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별보배고둥 껍데기와 현시대의 기축통화인 달러의 가치는 우리의 공통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화폐의 진정한 가치는 조개껍데기나 종이의 화학적 구조, 색상, 형태 속에 있지 않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돈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물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물질을 마음으로 전환함으로써 작동합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화폐로 널리 쓰였다는 별보배고둥 껍데기

 

 

하지만 왜 그것이 성공했을까요?

비옥한 논을 쓸모없는 별보배고둥 껍데기 한 줌과 기꺼이 바꿀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요?

혹은 왜 우리는 겨우 색칠한 종이 몇 장을 받자고 기꺼이 햄버거를 뒤집고, 보험을 팔고,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기꺼이 돌봐주는 것일까요?

 

 

화폐의 근간은 바로 신뢰

 

사람들이 기꺼이 그런 일을 하려 드는 것은 자신들의 집단적 상상의 산물을 믿기 때문입니다. 즉, 신뢰는 온갖 유형의 돈을 주조하는 데 쓰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앞서 언급한 부유한 농부가 재산을 팔고 별보배고둥 껍데기 한자루를 받아서 다른 지방으로 여행을 갔다고 칩시다.

 

 

그는 그곳의 사람들이 별보배고둥 껍데기를 받고 기꺼이 쌀과 집과 밭을 팔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화폐란 상호신뢰 시스템의 일종이지만, 그저 그런 상호신뢰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한 것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신뢰 시스템입니다.

 

 

이런 신뢰를 창조한 것은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의 매우 복잡하고 장기적인 네트워크입니다. 나는 왜 별보배고둥 껍데기나 금화나 달러를 신뢰할까? 그것은 바로 내 이웃들 역시 그것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 이웃들이 그것을 신뢰하는 이유는 내가 그것을 신뢰하기 때문이지요. 즉, 우리 모두가 그것을 믿는 이유는 우리의 왕이 역시 그것을 믿고 그것을 세금으로 받기 때문이며, 우리의 사제가 역시 그것을 신뢰하며 십일조로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로 달러 지폐 한 장을 꺼내 잘 살펴보세요.

앞면에는 미국 재무성 장관의 서명이 있고, 뒷면에는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구호가 쓰여 있는 알록달록한 그저 종이 한장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달러를 받는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미국 재무성을 믿기 때문이에요.

 

 

달러의 앞면과 뒷면의 모습

 

 

신뢰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왜 금융 시스템이 우리의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 시스템과 그토록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설명해줍니다. 또한 금융 위기가 정치적 정세에 의해 촉발되는 일이 왜 그렇게 흔한지도 이해가 되고요. 왜 주식시장에서는 참여자들이 어느 날 아침 어떤 기분이냐에 따라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는지를 설명해줍니다.

 

 

역사상 최초의 화폐, 보리!

 

맨 처음에 화폐의 최초 버전이 만들어졌을 때는 사람들이 이런 신뢰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내재적 가치를 지닌 물건을 <화폐>로 정의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화폐로 알려진 수메르인의 보리 화폐가 좋은 사례입니다.

 

 

이 화폐는 기원전 3000년 경 수메르에서 글쓰기가 등장한 것과 똑같은 시기와 장소에, 또한 똑같은 상황에서 출현했습니다. 글쓰기가 행정활동을 강화할 필요에 부응해서 발달했던 것처럼, 보리 화폐는 경제활동을 강화할 필요에 부응해 발달했습니다.

 

 

보리 화폐는 그냥 보리였어요. 다른 모든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평가하고 교환하는 데 정해진 양의 보리를 보편적 척도로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가장 흔한 단위는 실라였는데 대략 1리터에 해당하는 양이었습니다. 한 실라를 담을 수 있는 표준화된 그릇이 대량생산되어 사람들은 물건을 사고 팔 때 필요한 양 만큼의 보리를 쉽게 잴 수 있었습니다.

 

 

월급 역시 ‘보리 몇 실라’라는 식으로 결정되고 지불되었습니다. 당시에 남자 노동자는 한 달에 60실라를, 여자 노동자는 30실라를 벌었다고 합니다. 건설현장의 감독은 1,200~5천 실리를 벌 수 있었구요. 아무리 걸신들린 감독이라도 한 달에 보리 5천 리터를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는 먹지 않는 실리를 기름, 염소, 보리 외의 식량 등 온갖 생필품을 사는 데 이용했습니다.

 

 

보리가 실질적 가치를 지닌다고 해도, 이것을 그냥 하나의 생필품이 아니라 돈으로 사용하도록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는 것은 쉽지않았습니다. 상상해보세요.

 

 

만일 당신이 동네 쇼핑몰에 보리가 가득한 자루를 들고 가서 셔츠나 피자를 사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상인들은 아마도 경비를 부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리를 첫 번째 유형의 화폐로 받아들이고 신뢰하는 것은 어느 정도 쉬운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보리에는 내재된 생물학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사람이 그것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보리는 저장하거나 운반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은의 무게를 이용한 세겔의 등장!

 

화폐의 역사에서 진정한 돌파구가 생긴 것은 그 자체로는 내재적 가치가 없는 돈, 하지만 저장과 운반이 쉬운 돈을 사람들이 신뢰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그런 화폐는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의 중간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현했습니다. 바로 은으로 된 세겔이었습니다.

 

 

세겔은 은화가 아니라 정확히 은 8.33 그램을 말합니다. 함무라비 법전은 귀족 남성이 노예 여성을 죽인 경우 그 소유자에게 은 20세겔을 지불해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은화 스무 개가 아니라 은 166 그램을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화폐 관련 용어는 대부분 동전이 아니라 은과 관련된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그를 이스마엘의 자손들에게 은 20세겔, 즉 은 166그램에 팔았다고 나옵니다. 당시 노예 여성의 목숨 값과 같습니다.

 

 

보리 실라와 달리 은 세겔은 고유한 가치를 지니지 않았습니다. 은은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옷을 해 입을 수도 없습니다. 유용한 도구를 만들기에는 너무 무르고요. 은으로 만든 보습이나 칼은 알루미늄 호일로 만든 것처럼 금세 구겨져버릴 것이니까요. 금이나 은이 뭔가 쓸모가 있다면 그것은 고작 장신구나 왕관을 비롯한 신분의 상징을 만드는 재료일 것입니다. 특정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높은 사회적 지위와 동일시하는 사치품 말입니다. 그 가치는 순전히 문화적입니다.

 

 

최초의 금속 화폐, 리디아의 주화 등장! 

 

정해진 무게의 귀금속은 결국 동전, 즉 주화를 탄생시켰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주화는 기원전 640년경 아나톨리아 서부에 있던 리디아의 왕 알뤼아테스가 만들었습니다. 이 주화는 표준화된 무게의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졌고, 식별 표식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표식은 두 가지를 증명했습니다.

 

 

첫째, 해당 주화에 귀금속의 양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알려주었습니다.

둘째, 주화를 발행하고 그 내용물을 보증한 당국이 누군지를 확인해주었습니다. 오늘날 사용되는 거의 모든 주화는 리디아 주화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세계 최초의 금속 화폐로 알려진 리디아의 주화

 

 

역사상 초기 동전은 기원전 7세기경 소아시아의 고대국가인 리디아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주화는 표식이 없는 금속덩어리에 비해 두 가지 중요한 장점을 지녔습니다.

 

 

첫째, 금속덩어리는 거래할 때마다 무게를 재야만 합니다.

둘째, 무게를 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제화공이 신발의 대가로 주고 받은 은괴가 순수한 은으로 만든 것인지 납에 은을 도금한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주화는 이런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각인된 표식이 정확한 가치를 증명하기 때문에, 제화공은 금전등록기 옆에 저울을 놔둘 필요가 없습니다. 더욱이 주화의 표식은 그 주화의 가치를 보장한 어느 정치 권력의 서명이었습니다. 표식의 형태와 크기는 역사를 통틀어 크게 달랐지만, 메시지는 늘 같았습니다.

 

 

“나, 위대한 왕 아무개는 이 금속 원반에 정확히 5그램의 금이 들어 있다는 점을 개인적으로 보증한다. 감히 이 주화를 위조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나의 서명을 위조하는 것이고 이는 내 명성에 오점이 될 것이다. 나는 그런 범죄를 최고로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다.”

 

 

돈을 위조하는 행위가 다른 종류의 사기에 비해 항상 훨씬 더 심각한 범죄로 취급되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위조는 단순한 사기가 아닙니다. 주권 침해이고, 왕의 힘과 특권과 왕 개인에 대한 반역 행위입니다. 여기 해당하는 법률용어는 <왕권 침해>였으며, 그 처벌은 보통 고문과 죽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왕의 권력과 진실성을 신뢰하는 한 그의 주화도 신뢰했지요. 완전한 이방인들도 로마의 데나리우스 주화의 가치에 쉽게 동의할 수 있었는데, 주화에 그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로마 황제의 권력과 진실성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의 화폐였던 데나리우스 은화, 금화도 존재했었다.

 

 

한편 그 황제의 권력은 또한 데나리우스에 기초를 두고 있었습니다. 주화가 없었다면 로마 제국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생각해보세요. 황제가 보리와 밀로 세금을 거두고 이것으로 월급을 지급했다면 어땠을까요?

 

 

시리아에서 세금으로 보리를 걷어 로마의 중앙금고로 수송한 뒤 다시 브리튼 주둔 군단에 월급으로 지급하기 위해서 수송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만일 로마 주민들은 금화를 신뢰하지만 갈리아인, 그리스인, 이집트인, 시리아인은 그 신뢰를 거부하고 별보배고둥 껍데기나 상아 구슬, 피륙 천을 신뢰했다면, 그런 경우에도 역시 제국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화폐의 탄생은 이처럼 인류의 정치, 사회, 경제 등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네트워크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화폐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서 화폐가 가진 내재적 가치에 비해 권력자에 의해 그 가치를 높게  공인받으며 인간 세상에 미치는 파급력이 가장 큽니다.

 

 

인종, 나라, 문화가 달라도 인간들의 돈, 즉 화폐를 많이 소유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화폐가 가치교환의 수단으로 작동하는 근본에는 바로 신뢰라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시대 기축통화인 달러가 모든 사람들에게 가치교환의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패권국가인 미국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는 망할지언정 미국이라는 나라는 결코 망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내가 가진 달러의 가치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은 유발하라리의 저서 사피엔스에 나오는 화폐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정말 흥미롭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