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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1265 ~ 1321), 단테의 삶과 그의 대표작 <신곡>

꿈달(caucasus) 2020.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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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 단테 알리기에리(1265 ~ 1321), 단테의 삶과 그의 대표작 <신곡>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과 피사의 사탑, 미켈란젤로 광장 등을 여행했던 후기를 올렸는데요. 시뇨리아 광장 인근에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당 주변에 단테의 생가가 있지요. 지금은 단테를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운영중인데요. 저는 2년전에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단테' 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도 단테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여행하면서 이분에 대해 조사해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명성이 매우 높더라구요. 단테는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대문호이자 천재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또한 피렌체 시민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지요. 오늘은 단테를 소재로 포스팅을 올려봅니다. ^-^

 

단테의 생가(Via Santa Margherita, 1, 50122 Firenze FI), 지금은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으로 사용중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탈리아’ 라는 나라가 생긴 것은 19세기 후반입니다. 그전까지는 여러 도시국가와 공국 등 저마다 세력을 형성하고 외세의 압력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고대 로마제국 시절에는 유럽 전역을 통치하는 제국의 면모를 보였지만 그 이후로 줄곧 세력이 약화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의 민족적인 동질성에 대한 의식이 아예 없지는 않았고, 13~14세기에 이루어진 경제력의 향상과 르네상스의 탄생으로 문화 민족이라는 자긍심이 아주 높아졌습니다. 바로 이 시기를 전후해 활동한 단테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이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신곡> 이 있습니다.

 

르네상스의 시작으로 평가받는 도시인 피렌체에서 단테가 태어났습니다. ^^ 그리고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짝사랑 이야기는 유명하지요. 살짝 말씀드리면 어릴때 단테가 우연히 베키오 다리에서 베아트리체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때 단테가 10세, 베아트리체는 9세... ;;; 어린 나이라고는 하지만 하여튼 그랬답니다. ㅋㅋ 그런데 두 사람은 맺어지지 않았어요. 각자 집안에서 정해놓은 약혼자가 따로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둘은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영국의 화가 헨리 홀리데이(1839-1927)_베아트리체를 만난 단테

 

그러다가 단테가 처음 베아트리체를 만난지 정확히 9년 후에 거리에서 우연히 또 마주치게 되었는데, 이 때 베아트리체는 의례적인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인사를 받은 것만으로도 단테는 열정에 불타올라 그녀를 향한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몇 년 뒤에 베아트리체가 갑자기 사망하게 되고, 단테는 충격에 휩싸이고 마음의 위안을 삼기 위해 광범위한 독서를 하게 되었는데요. 이러한 과정에서 세계적인 고전인 <신곡> 이 쓰여지게 됩니다. 물론 단테가 살아가던 14세기 후반은 이탈리아가 정치적으로도 매우 혼란했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단테의 가장 큰 업적은 오늘날의 이탈리아어를 확립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단테가 살아가던 시기에도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국가마다 방언을 사용했지요. 그러나 <신곡> 이후로 소설에 사용된 피렌체의 말, 즉 토스카나 방언이 공용어나 다름없게 되었습니다. 문학사적인 영향력 면에서 단테는 가장 위대한 작가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 문학적 성취나 영향력에서는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 괴테와 발자크 같은 저명한 작가들과 충분히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해럴드 블룸은 <세계문학의 천재들> 에서 “세계 역사에서 단테를 주목하지 않고는 천재를 논할 수 없다. 그는 (…)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풍부한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라고 전제한 다음, “<신곡> 과 필적하거나 이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셰익스피어가 남긴 39편의 희곡 중 가장 뛰어난 20여 편을 하나의 작품으로” 간주해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고 극찬했다고 합니다.

 

도메니코 미 미첼리노(1417-1491)의 <신곡>을 손에 들고 있는 단테. 지옥(좌측),연옥의 산(중앙), 그의 고향 피렌체(우측)의 모습이 보인다.

 

단테는 본래 명석하고 라틴어에 아주 능통했다고 합니다. 정치 관료로 일하는 시절에는 행정과 정치적인 면에서 뛰어난 두각을 보이기도 했구요. 단테는 서른살이 되던해(1295년) 피렌체의 약제사 조합에 가입함으로써 정계에 입문하고 탁월한 지성과 언변으로 두각을 보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혼란한 권력 투쟁에서 단테 역시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임기 2년제인 피렌체 행정부 최고위원 3인 중 1인으로 재직할 때, 비앙키당과 네리당 간의 분쟁을 주도한 양당의 문제 인물들을 추방함으로써 명성이 올라감과 동시에 적대적인 원한도 만들게 되었지요. 1301년에 프랑스의 귀족인 샤를 백작이 교황의 요청으로 군대를 이끌고 피렌체로 진격하자, 단테는 교황을 설득해 전쟁을 막기 위한 사절단의 일원으로 로마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가 로마에 머물던 11월 1일, 샤를이 피렌체에 진입함과 동시에 그 위세를 업은 네리당의 주요 인사들이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네리당과 단테는 원수같은 사이였지요.)

 

단테는 그의 나이 37살이 되던 해 (1302년 1월 27일) 궐석재판에서 피렌체시의 최고위원 재직 당시 뇌물 수수 및 각종 비리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선고를 받습니다. (네리당의 단테를 향한 복수의 시작입니다.)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돌아오던 단테는 이 소식을 듣고 귀향을 포기했으며, 이때부터 사망할 때까지 줄곧 타향을 전전하는 신세가 됩니다. 단테의 최고 걸작인 <신곡>* 은 그의 삶에서도 가장 어두웠던 바로 이 시기에 나온 작품입니다.

 

*단테는 <신곡> 에서 평소 존경했던 로마 시대의 서사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부활절 전후 일주일 동안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여행한다. 신곡은 시로 표현된 단테의 자서전”(R. W. B. 루이스)이다. 그는 두 명의 교황을 비롯한 자신의 적들을 지옥에 던지고, 자신의 친구와 존경하는 인물은 연옥(또는 림보)에 두었고, 자신이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천국에 모셨다. 이처럼 당시의 역사와 현실이 곳곳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 신곡을 읽기 위해서는 방대한 주석과 해설을 참고해야만 한다. 그러나 가장 유명한 지옥의 경우에는 사전지식 없이 읽어도 충분히 압도적이며, 단테의 탁월한 상상력이 빚어낸 걸작이다.

 

 

단테의 인생 후반기는 정말 암울하고 우울했습니다. 단테가 평생 사랑했던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려고 수없이 시도하지만 이미 피렌체는 그와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했던 네리당의 주요 인사들이 장악했기 때문이지요. 물론 피렌체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네리당에서는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단테에게 피렌체로 돌아오려면 막대한 벌금을 내고 동시에 공개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는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합니다. 단테는 이에 조목조목 부당함을 반박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지만, 결국 네리당은 단테와 피렌체에 남아있던 그의 세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의 세 아들은 다행히 무사히 도주하는데 성공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단테는 피렌체를 떠나온 이후로 계속 다른 지역에 머물며 신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천국>을 마무리합니다. 천국을 마무리한 곳은 이탈리아의 '라벤나' 라는 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라벤나의 외교 사절로 베네치아에 다녀오다가 병에 걸려 1321년 9월 14일, 그의 나이 56세에 사망하게 됩니다. (역시 천재는 어딜가나 쓰임을 받는가 봅니다. 라벤나에서도 외교관을 지냈네요.ㅎㅎ)

 

 

단테는 56년 일생동안 3분의 1에 해당하는 19년을 여러 지역을 배회하며 결국 쓸쓸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나서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피렌체는 단테의 유골을 모셔오려 했지만 라벤나는 번번이 거절했습니다.  1519년에 교황이 그 분쟁에서 결국 피렌체의 손을 들어주자, 라벤나는 단테의 유골을 몰래 빼돌리는 것으로 응수했습다.ㅎㅎ 모처에 은닉되었던 유골이 발견되어 라벤나의 작은 교회에 안치된 것은 무려 500년이 지난 1865년이 되어서입니다. 사후 500년이 되어서야 단테의 긴 유랑은 비로소 끝났던 것입니다. ^^; (있을때 잘하지~ 라는 말이 이럴때 딱 맞는 말이네요.ㅋㅋ)

 

단테의 인생은 정말 파란만장했습니다. 베아트리체와의 순수했던 짝사랑도 그렇고, 그의 천재적인 재능이 빛을 발하기도 했으며 동시에 적대관계에 있는 세력들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유랑자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쓰여진 그의 대표작 <신곡> 은 지금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고전이 되었네요. 이러한 단테의 배경 이야기를 알고 보니 <신곡>이라는 소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듭니다. 2년전에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신곡>을 읽어보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못보았거든요. 다시금 리딩 위시 리스트에 추가해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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