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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 과 홍위병, 중국 근현대사의 커다란 비극

꿈달(caucasus) 202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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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 과 홍위병, 중국 근현대사의 커다란 비극

 

어제는 오후에 둘째 아이가 낮잠을 꽤 오래 자주는 바람에...^-^ 오랜만에 책을 좀 진득하게 읽었습니다. 요즘 <삼체> 라는 '류츠신' 작가의 하드SF 소설을 재미있게 읽고 있지요. 내용이 외계 문명과의 조우, 그리고 인류의 생존을 건 대결을 그리고 있는데 아주 흥미롭습니다. 류츠신 작가의 상상력은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는 중국의 고대사부터 최신 물리학 이론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가며 아주 농도깊은 재미를 제공합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다보니 중요한 이벤트가 되는 중국 근현대사의 <문화대혁명> 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말입니다. 문화대혁명과 함께 항상 등장하는 <홍위병> 이라는 말도 들어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 사회 등 뉴스에서 자주 듣는 용어입니다. '문화대혁명' 에 대한 배경지식이 약하다 보니 소설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 또 공부를 해봅니다. 도대체 중국의 <문화대혁명> 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홍위병> 은 또 무엇인가? 

 

<삼체> 라는 소설속에서 중요한 등장인물로 은퇴한 여성 천문학자가 나오는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나네요. ㅋㅋ 하여튼, 이 연로한 천문학자의 아버지가 '예저타이' 라는 저명한 물리학자였습니다. 그 분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사회주의 반동분자' 로 고발되어 홍위병들 앞에서 '자아비판' 을 받던 중 폭행을 당해 사망하고 맙니다. 그분의 딸이 그 장면을 목격하고 이 소설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 부분에서 '문화대혁명' 시기의 '홍위병' 들의 만행에 대해 아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치 제가 그 '자아비판' 이라는 현장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요... 그런데 '문화대혁명' 이라는 역사적 배경지식이 약하다 보니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중국 현대사의 비극이었던 <문화대혁명> 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문화대혁명' 은 1966년~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운동입니다. '문화대혁명' 은 전근대적인 문화와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사회주의를 실천하자는 운동입니다. 이로 인해 전통적인 중국의 유교문화가 붕괴되었고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마오쩌둥은 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 의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되자 문화대혁명으로 중국공산당 내부의 정치적 입지를 회복하고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였으며 혁명은 공산당 권력투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1958년 타이완(장제스의 국민당 정부, 중화 민국)이 중국에 대포를 쏜 일이 일어났지요. 중국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의 도움을 기대했지만, 소련은 이를 거부하고 중국이 부탁한 핵개발 기술을 제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때 중국과 소련은 사회주의에 대한 생각의 차이로 싸우고 있었거든요. 또한 당시 소련은 미국과의 화해를 추진하고 있던 터라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꺼렸다고 합니다. 이후 중국은 독자적으로 핵개발에 나서게 되었고 1964년에는 핵무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소련의 경제적인 도움이 끊기자, 중국의 경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급속한 공업화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자는 목표 아래 1958년부터 추진했던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자연재해가 겹치면서 2천만 명 이상의 농민들이 사망한 것은 마오쩌둥의 방향이 어긋났음을 말해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마오쩌둥은 국가주석을 사임하였습니다. 대약진운동이 좌절된 이후 중국공산당 내부에 사회주의 건설을 둘러싼 노선대립이 생겨났고,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은 대중노선을 주장하였으나, 류사오치·덩샤오핑 등의 실용주의자들은 공업 및 각 분야별 전문가를 우선시 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무너진 민생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자본주의 정책의 일부를 채용한 정책이 실효를 거두면서 류사오치(劉少奇,유소기)와 덩샤오핑 (鄧小平,등소평)이 새로운 권력의 실세로 떠오르기 시작했지요. 이에 권력의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부르주아 세력의 타파와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면서 이를 위해 청소년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문화대혁명 당시 천안문 광장에 모인 홍위병들

 

청소년(고교생, 대학생)으로 구성된 홍위병은 전국을 돌며 모든 낡은 것을 파괴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각종 문화재와 예술품이 파괴되었고 ‘사회주의 반동분자’ 로 지목된 사람들은 홍위병이 개최한 대회에 끌려나와 자아 비판을 해야 했습니다. 말이 자아비판이지 많은 대중들 앞에서 모욕과 망신을 주기 위함이고 심지어 자아비판중 폭력을 행사하여 숨지는 사람도 다수였다고 합니다. 많은 관리와 지식인, 학자가 비판과 모욕을 당하고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학대 끝에 목숨을 잃었으며, 자살을 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마오쩌둥이 사회주의 문화를 건설하자는 의미에서 붙여진 ‘문화 대혁명’은 이름과는 다르게 산업, 과학 기술, 교육 등 사회 전반에 큰 피해를 주었습니다. 중국에 피바람을 몰고 온 문화 대혁명은 마오쩌둥이 숨을 거둔 1976년에야 끝이 납니다. 마오쩌둥 사망 후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에 대해 ‘극좌적 오류’ 였다는 공식적 평가와 함께 문화대혁명의 광기는 급속히 소멸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중국의 초대 권력자였던 마오쩌둥이 그가 추진한 <대약진운동> 정책이 실패하고 수많은 국민들이 자연재해로 사망하게 되자 지지도 하락과 권력에 위협을 느낀 나머지, 극단적인 좌익 사회운동을 부추겨 자신의 권력 유지에 위협이 되었던 경쟁자들을 숙청하고 사회를 거대한 혼란에 빠뜨린 사건입니다. 지금 시대에는 참으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런 비극이 끝난지 50년이 채 안되었네요. 중국이라는 나라도 참 내홍이 깊었습니다.

 

가끔 뉴스에서 정치나 시시적인 이슈가 있을때 극단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고수하면서 남의 의견을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일컬어 <홍위병> 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문화대혁명> 에 대해 알고 보니 왜 그 사람들을 <홍위병> 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 중국 근현대사에서 참으로 비극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네요. 남의 나라 역사까지 알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기에 역사를 제대로 알고 국민들이 권력에 대해 항상 감시하고 깨어있다면 '문화대혁명' 과 같은 비극을 막을 수 있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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